임춘앵
1923 - 1975.03.16
인물 개인 연극영화인
인물 개인 음악가
여성국극인으로 판소리 명창이다. 1948년 서울에서 박녹주·김소희 등과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고, 여성 창극인만으로 「옥중화」라는 이름으로 「춘향전」을 창극으로 꾸며 공연하였으며, 1961년에는 여성국악동지사를 조직하여 창극 「공주의 비밀」을 공연하였다. 여성국극의 명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1960년대 이후 여성국극의 쇠퇴로 은거하였다. 1970년대 장위동으로 이사하여 김진진과 함께 ‘임춘앵국악연구소’를 열어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힘썼다.
장위동

기본정보

시기

  • 시대: 일제강점기
  • 시기: 1923 - 1975.03.16
  • 비고: 1921년생이라는 설도 있음.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237-67

근거자료 원문

  • 정의 해방 이후 「옥중화」·「공주의 비밀」 등에 출연한 배우.창극인. 내용 본명은 종례(終禮).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라는 설과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판소리 명창이며 창극인인 임유앵(林柳鶯)의 아우이다. 광주(光州)의 유성준(劉成俊), 서울의 정정렬(丁貞烈)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48년 서울에서 박녹주(朴綠珠)·김소희(金素姬) 등과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고 시공관(市公館)에서 여성창극인만으로 「옥중화(獄中花)」라는 이름으로 「춘향전」을 창극으로 꾸며 공연하였는데 이때 이도령역을 맡았다. 1949년 김아부(金亞夫)의 창극「햇님 달님」에 출연하였다. 1961년에는 광주에서 임유앵과 더불어 여성국악동지사(女性國樂同志社)를 조직, 조건(趙健) 작 창극「공주의 비밀」을 청주에서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여성국극(女性國劇)의 명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1960년대 이후 여성국극의 쇠퇴로 은거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 임춘앵
  • 이후 1970년대 장위동으로 이사하여 임춘앵과 함께 ‘임춘앵국악연구소’를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춘앵이 세상을 떠나며 국악연구소를 이어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힘썼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75쪽
    김진진 설명에 나오는 임춘앵에 대한 내용이다. 1970년대 임춘앵과 김진진은 장위동으로 이사하여 '임춘앵국악연구소'를 열었고, 임춘앵이 세상을 떠난 후 김진진이 국악연구소를 이어받았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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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진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