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앵
1924.09.04 - 1975.03.16
인물 개인 연극영화인
인물 개인 음악가
여성국극인이다.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1936년 광주 권번에 들어가 이매방, 박모란 등과 함께 소리와 춤을 배웠다. 1939년 상경하여 1944년 조선창극단에 입단한다. 1948년 서울에서 박녹주·김소희 등과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고, 여성 창극인만으로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화>라는 공연을 올렸는데 이때 임춘앵이 이몽룡역으로 발탁되면서 여성국극 최초의 남장연기자가 된다. 이후 <햇님과 달님>이 크게 성공하면서 여성국극에 대명사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여성국극이 쇠퇴하면서 은거하였다가 1968년 조카 김진진의 도움으로 장위동에 ‘임춘앵 무용 연구소’를 열어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힘썼다. 1975년 뇌출혈로 인해 장위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장위동
  • 임춘앵 집터

기본정보

시기

  • 시대: 일제강점기
  • 시기: 1924.09.04 - 1975.03.16
  • 비고: 『임춘앵 전기』에 근거하여 작성(반재식 외, 2002, 『임춘앵 전기』, 백중당)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237-63
  • 비고: 『임춘앵 전기』에 근거하여 작성(반재식 외, 2002, 『임춘앵 전기』, 백중당)

근거자료 원문

  • 정의 해방 이후 「옥중화」·「공주의 비밀」 등에 출연한 배우.창극인. 내용 본명은 종례(終禮).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라는 설과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판소리 명창이며 창극인인 임유앵(林柳鶯)의 아우이다. 광주(光州)의 유성준(劉成俊), 서울의 정정렬(丁貞烈)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48년 서울에서 박녹주(朴綠珠)·김소희(金素姬) 등과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고 시공관(市公館)에서 여성창극인만으로 「옥중화(獄中花)」라는 이름으로 「춘향전」을 창극으로 꾸며 공연하였는데 이때 이도령역을 맡았다. 1949년 김아부(金亞夫)의 창극「햇님 달님」에 출연하였다. 1961년에는 광주에서 임유앵과 더불어 여성국악동지사(女性國樂同志社)를 조직, 조건(趙健) 작 창극「공주의 비밀」을 청주에서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여성국극(女性國劇)의 명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1960년대 이후 여성국극의 쇠퇴로 은거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 임춘앵
  • 이후 1970년대 장위동으로 이사하여 임춘앵과 함께 ‘임춘앵국악연구소’를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춘앵이 세상을 떠나며 국악연구소를 이어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힘썼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75쪽
    김진진 설명에 나오는 임춘앵에 대한 내용이다. 『임춘앵 전기』에는 '임춘앵 국악연구소'가 아닌 '임춘앵 무용연구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기에 따르면 임춘앵은 60년대 여성국극이 쇠퇴하면서 국극단체 활동을 중단하고 은거하였는데 조카 김진진의 도움으로 1967년 장위동에 '임춘앵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1968년 김진진에게 몸을 의탁하였다고 한다. (반재식 외, 2002, 『임춘앵 전기』, 백중당 참고)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5
  • 수정자: 오진아
  • 수정일: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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