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1970년대 장위동으로 이사하여 임춘앵과 함께 ‘임춘앵국악연구소’를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춘앵이 세상을 떠나며 국악연구소를 이어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힘썼다.
김진진 설명에 나오는 임춘앵에 대한 내용이다. 『임춘앵 전기』에는 '임춘앵 국악연구소'가 아닌 '임춘앵 무용연구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기에 따르면 임춘앵은 60년대 여성국극이 쇠퇴하면서 국극단체 활동을 중단하고 은거하였는데 조카 김진진의 도움으로 1967년 장위동에 '임춘앵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1968년 김진진에게 몸을 의탁하였다고 한다. (반재식 외, 2002, 『임춘앵 전기』, 백중당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