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제당은 돈암동 한진아파트(동서문한진아파트) 301동 맞은편 산능선의 중턱에 있다. 한진아파트 301동의 뒤편 쉼터 아래로 계단으로 내려가면 아파트와 산 사이의 밭으로 내려 갈 수 있다. 이 밭에서 산쪽 방향으로 산제당인 1칸 규모의 스레이트 지붕에 시멘트건물이 보인다. 밭을 가로 질러 제단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현재 산제당은 약 10여 년 전부터 이공헌씨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당의 크기는 1칸으로 내부에는 정면에 산신도가 걸려있다. 산신도는 가로 158cm, 세로 127cm이며, 하단부 좌측에 '庚午年 十月 十日 조희수 모심'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당의 지붕은 누군가 당의 천막을 훼손해 빗물이 새서 천막용 비닐을 덮어두었다. 본래 산제당은 현재의 구민회관 근처에 있었다. 산제당이 있던 곳은 동구여상의 부지였는데, 1970년대 동구여상에서 담장공사를 하며 현재의 터로 산제당을 옮겨지었다. 당시의 당은 기와 건물로 1칸 크기였으며, 제당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당시의 제비는 통장을 중심으로 추렴되었고 제관도 통장의 주관하에 뽑혔다. 당시의 제의는 돼지머리와 오색과일, 통북어, 시루떡, 막걸리 등을 올렸으며, 제관 몇 사람만 제사를 지냈다. 여성의 참여는 제한되었다.
당 이전 전부터 당의 관리는 무당이 들어와 관리를 하는 상태였으나, 그 때까지는 돈암동의 마을 사람들도 음력 10월에 통장을 중심으로 제비를 마련하고 제관을 뽑아 산신제를 지냈다. 평소의 당의 관리는 무당이 맡아 하고 마을 사람들은 음력 10월에 산신제만 올리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개발이 진행이 본격화 단계에 들어선 1990년 무렵 이후 마을 공동의 산신제는 어렵게 되었다.
약 10여 년 전 당을 관리하던 무당이 죽고 현재 당을 관리하는 이공헌씨가 물려받았다. 이공헌씨는 보살의 단골이었다. 이씨는 매달 초하루 당에 생쌀과 북어, 막걸리 등을 올리는 상식과 매년 10월에 날을 잡아 산신제를 지낸다. 매달 초하루에는 상식을 지어 올리는데, 이공헌씨가 일찍 상처한 사정상 메를 지어 올리기 힘들어 대신 생쌀을 그래도 올린다. 10월 초하루에는 개인비용으로 통돼지와 시루떡, 오색과일 등을 장만해 산신제를 올린다. 2002년도에는 통장, 파출소장 등도 참가하여 산신제를 지냈었다. 현재 돈암동의 산제당에는 무당들이 개인치성을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찾는 사람들이 주변정이를 하지 않아 이공헌씨가 당의 문앞에 주변 정리를 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써놓은 종이를 붙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