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 산신제
?
비지정 문화재
사건 의례
성북구 돈암동 606-56에 있던 산신당에서 매년 음력 10월 1일에 거행했던 의식이다. 산신제는 산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동 단위로 거행했던 마을 제사인데, 마을 주민들의 무병장수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기도를 산신에게 올리는 것이다. 마을 사람 중에 선출된 제주(祭主)가 주관하는데 선정된 제관들은 부정한 것을 피하는 행동의 규제가 따르고, 제를 치르는 기간 동안에는 금기가 엄격하게 지켜진다. 의식은 유교적 방식을 취하여 축문(祝文)을 고하고 분향(焚香)과 헌작(獻爵)을 반복하고, 소지(燒紙)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다. 현재 산신당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으며 산신제도 지내지 않는다.
돈암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敦岩洞 山神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사건 의례

시기

  • 시대: 미상
  • 시기: ?
  • 비고: 음력 10월 초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606-56
  • 비고: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사라짐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2) 敦岩洞 山神堂 祭日은 음력 10월 1일이다. 祭主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祭堂에 모여 儒禮式으로 致祭한다. 祭需는 牛頭와 三色果實, 포 그리고 시루떡을 쓰며 생선 종류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祭主의 選定은 매년 統長이 정결하고 신수가 좋은 사람 중에서 선정한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年老한 분을 祭主로 선정했다고 한다. 선정된 祭主는 祭費를 추렴하고 祭物구입을 지시하는 등 마을 土着人과 함께 祭를 주관한다. 祭日이 다가오면 山神堂 주위에 禁줄을 쳐서 雜人의 출입을 통제하며 특히 住民 중 不淨한 사람은 참가할 수 없다. 祭의 목적은 마을의 편안함과 주민의 無病長壽에 그 뜻을 두고 있다. 洞神 信仰은 逐災招福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각종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려는 종교적인 呪術行爲로서 일상생활에서 예기치 않는 사고나 어떤 災難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그들 스스로의 祭儀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고 있다. 洞神을 信奉하는 주민들 사이는 一心同體가 되어 祭堂을 비롯한 그 주위와 마을 청소를 공동으로 하고 謹身한다. 致祭하는 신성기간 동안에는 엄격한 禁忌 가 따르며 선정된 祭官은 행동 일체가 규제되는 규범도 부여된다. 이 기간 동안은 외부인의 출입도 통제되고 不淨한 일을 보지 않는 등 自律的인 禁忌가 그들 스스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엄숙성과 정결성은 기성종교의 聖職者나 信徒이상으로 선성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38-639쪽
  • 산제당은 돈암동 한진아파트(동서문한진아파트) 301동 맞은편 산능선의 중턱에 있다. 한진아파트 301동의 뒤편 쉼터 아래로 계단으로 내려가면 아파트와 산 사이의 밭으로 내려 갈 수 있다. 이 밭에서 산쪽 방향으로 산제당인 1칸 규모의 스레이트 지붕에 시멘트건물이 보인다. 밭을 가로 질러 제단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현재 산제당은 약 10여 년 전부터 이공헌씨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당의 크기는 1칸으로 내부에는 정면에 산신도가 걸려있다. 산신도는 가로 158cm, 세로 127cm이며, 하단부 좌측에 '庚午年 十月 十日 조희수 모심'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당의 지붕은 누군가 당의 천막을 훼손해 빗물이 새서 천막용 비닐을 덮어두었다. 본래 산제당은 현재의 구민회관 근처에 있었다. 산제당이 있던 곳은 동구여상의 부지였는데, 1970년대 동구여상에서 담장공사를 하며 현재의 터로 산제당을 옮겨지었다. 당시의 당은 기와 건물로 1칸 크기였으며, 제당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당시의 제비는 통장을 중심으로 추렴되었고 제관도 통장의 주관하에 뽑혔다. 당시의 제의는 돼지머리와 오색과일, 통북어, 시루떡, 막걸리 등을 올렸으며, 제관 몇 사람만 제사를 지냈다. 여성의 참여는 제한되었다. 당 이전 전부터 당의 관리는 무당이 들어와 관리를 하는 상태였으나, 그 때까지는 돈암동의 마을 사람들도 음력 10월에 통장을 중심으로 제비를 마련하고 제관을 뽑아 산신제를 지냈다. 평소의 당의 관리는 무당이 맡아 하고 마을 사람들은 음력 10월에 산신제만 올리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개발이 진행이 본격화 단계에 들어선 1990년 무렵 이후 마을 공동의 산신제는 어렵게 되었다. 약 10여 년 전 당을 관리하던 무당이 죽고 현재 당을 관리하는 이공헌씨가 물려받았다. 이공헌씨는 보살의 단골이었다. 이씨는 매달 초하루 당에 생쌀과 북어, 막걸리 등을 올리는 상식과 매년 10월에 날을 잡아 산신제를 지낸다. 매달 초하루에는 상식을 지어 올리는데, 이공헌씨가 일찍 상처한 사정상 메를 지어 올리기 힘들어 대신 생쌀을 그래도 올린다. 10월 초하루에는 개인비용으로 통돼지와 시루떡, 오색과일 등을 장만해 산신제를 올린다. 2002년도에는 통장, 파출소장 등도 참가하여 산신제를 지냈었다. 현재 돈암동의 산제당에는 무당들이 개인치성을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찾는 사람들이 주변정이를 하지 않아 이공헌씨가 당의 문앞에 주변 정리를 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써놓은 종이를 붙여놓았다.
    서울역사박물관, 2005, 서울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Ⅱ, 381-38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4

이 자료의 상위 자료 보기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