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신
1922 - 2014
인물 개인 종교인
승려이자 화가이다. 법명은 일당으로 일엽 스님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뒤 일본 도쿄제국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의 그림은 자연애와 강렬한 채색을 통한 감정표현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그 화폭에 그려진 자연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길을 따라 1988년 출가해 성라암에 주석하다 입적했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일당(日堂, 법명), 오다 유키무라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종교인

시기

주소

  • 주소: 02879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85 (성북로31길 27)
  • 비고: 성라암

근거자료 원문

  • 일엽 스님의 아들인 일당(김태신, 1922-2014) 스님은 1988년 출가하여 성라암에 주석하다 입적했다. 그는 어려서 이곳에 살며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재능 있는 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해방 직후에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를 그려 이후 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했다.
  • (인터뷰진행자)세이쬬? (구술자 : 정탄스님(성라원 주지))세이죠. 그래서 그 이념으로 깊은 사랑을 하다가 일당 스님을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 집안에서는 극렬한 반대가 이뤄지죠, 그래서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해요. 동경에서 일당스님 출산을 하고 일엽스님은 한국으로 오고 조선으로 오고 아버지 오다 세이죠는 다시는 내가 오다 가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노라 한 다음에 평생을 정말 외교관으로만 독신으로 살다가 죽어요. 근데 또 그 양반이 어디로 오냐면 조선 총독부 최고 관리로 와요. 아버지가. 그래서 만해스님, 만공스님 그 많은 큰 스님들이 만공스님이 일제시대 때 법회를 하면서 일본 놈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저 분 때문이었어요. 헌병들이 그때는 스님이고 뭐고 어디 있습니까? 자기 한국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일당스님을 심부름 뭐 싸 주는 거 들고 가고 결국 나중에 가보면 그게 독립자금이었다. 뭐 대부분 그래서…. 그 때 조선시대(일제시대에)에 오다 세이죠, (일당스님)일본명이 오다 유키무라에요. 일당스님 일본 이름이 오다 유키무라를 검문할 수 있는 헌병은 하나도 없었다 이거에요. 소위 말하면 우리나라 지금 말하는 국정원 같은. 그리고 또 하나는 저분이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일본이 돈이 없으니까 미국에 밀가루 구하러 가고 일본에 엔화 차관 빌리러 가고 그 차관을 우리나라에 오게끔 한 게 저 양반이에요. 자기 아버지 영향을 통해서 일본 정경계 움직여서 김종필씨가 우리나라 차관 그 차관이 들어오는 바람에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보릿고개가 없어졌고.
    박수진, 고지수, 이현주, 2015, 문화재의 숲, 사람의 마을 : 성북구 문화재지역 구술자료집, 114-115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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