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진행자)세이쬬?
(구술자 : 정탄스님(성라원 주지))세이죠. 그래서 그 이념으로 깊은 사랑을 하다가 일당 스님을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 집안에서는 극렬한 반대가 이뤄지죠, 그래서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해요. 동경에서 일당스님 출산을 하고 일엽스님은 한국으로 오고 조선으로 오고 아버지 오다 세이죠는 다시는 내가 오다 가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노라 한 다음에 평생을 정말 외교관으로만 독신으로 살다가 죽어요. 근데 또 그 양반이 어디로 오냐면 조선 총독부 최고 관리로 와요. 아버지가. 그래서 만해스님, 만공스님 그 많은 큰 스님들이 만공스님이 일제시대 때 법회를 하면서 일본 놈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저 분 때문이었어요. 헌병들이 그때는 스님이고 뭐고 어디 있습니까? 자기 한국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일당스님을 심부름 뭐 싸 주는 거 들고 가고 결국 나중에 가보면 그게 독립자금이었다. 뭐 대부분 그래서….
그 때 조선시대(일제시대에)에 오다 세이죠, (일당스님)일본명이 오다 유키무라에요. 일당스님 일본 이름이 오다 유키무라를 검문할 수 있는 헌병은 하나도 없었다 이거에요. 소위 말하면 우리나라 지금 말하는 국정원 같은. 그리고 또 하나는 저분이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일본이 돈이 없으니까 미국에 밀가루 구하러 가고 일본에 엔화 차관 빌리러 가고 그 차관을 우리나라에 오게끔 한 게 저 양반이에요. 자기 아버지 영향을 통해서 일본 정경계 움직여서 김종필씨가 우리나라 차관 그 차관이 들어오는 바람에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보릿고개가 없어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