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실의 딸이자 전 남편과 사별했던 김향안(변동림), 세 딸을 두고 이혼을 택한 김환기. 두 사람은 새로운 사랑과 만남이란 현재 앞에 과거는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과는 달리, 두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새 며느릿감이 과부에 소실의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김환기의 어머니는 몸져누웠으며, 김향안의 언니 또한 반대했다. 하지만 그들의 뜨거운 인연과 사랑은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
수화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사랑하고 존중하던 김향안에게도 말 못할 고충은 있었다. 김환기는 언제부터인가 목가구나 항아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목가구나 항아리를 사들이는 김환기를 보는 김향안의 심정은 착잡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빈궁한 처지에 전답을 팔아 돈도 되지 않는 목가구와 항아리를 사들이니, 생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향안은 김환기를 사랑하는 만큼 그의 수집 생활도 ‘아름다움의 발견’으로 이해했다. 김환기의 골동 수집 취미를 예술적 성취를 위한 공부로 받아들이고 지지했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엔 자기보다 큰 소나무 4층 탁자를 짊어지고 삼청동 산을 넘어 성북동 집에 왔다. 집 안은 목가구와 항아리로 가득 찼다. 탁자에 항아리를 올려놓고 바라보며 즐겼다. 즐겼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공부했다는 걸 거다.
-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김향안
-
김환기는 그의 생을 오로지 예술의 한 길에 바친 화가이다. 김환기가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도 그의 곁을 언제나 든든하게 지킨 그의 아내 김향안이었을 것이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 김향안은 그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환기미술관을 설립했다.
-
수화 김환기가 노시산방을 물려받은 것은 1944년 김향안과 결혼식을 올린 직후이다.
1944년 5월 1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고희동 선생 주례로 정지용, 길진섭의 사회로. 성북동 274-1. 근원 선생이 손수 지으신 노시산방을 물려받아 보금자리를 꾸미다. 섬에 내려가서 가족을 데려오다. 홀어머님과 아이들을.
― 김향안, 『월하의 마음』중에서
-
1963년 10월, 김환기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7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후 귀국하는 대신 뉴욕행을 선택했다.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예술을 평가 받기 위하여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나가기 위한 결정이었다. 유학 시절 일본을 오갔던 것을 제외한다면 파리에 이어 두 번째 외국 생활이었다. (뉴욕에서의 생활이 그의 인생의 종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홍익대 미대 학장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된 지위도 과감히 예술을 위해 포기했다. 경제적 고려는 뒷전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순우(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과장)가 미국 록펠러재단에 창작지원금을 알아봐 주었고, 한국에 있던 아내 김향안이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지원금을 신청하였다. 승인 절차는 순조로워 김환기는 이듬해 9월부터 1년 간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뉴욕에서 방을 얻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뒤 아내가 합류했으나 곧 1년간의 지원금도 끊기게 되자 부부는 경제난에 시달렸다. 김환기는 미국의 화상들에게 그림을 팔기도 했지만 아직 미국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때라 큰 수입을 바랄 순 없었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내 김향안이 글쓰기를 비롯해 이일저일을 해가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나갔다. 캔버스도 구하기 어려워서 신문지와 전화번호부 종이에다 유화를 그린 적도 많았다.
-
서울 출생. 수필가로 본명은 변동림이다. 1930년대 중반부터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1944년 화가 김환기와 혼인하였다. 당시로는 드물게 드레스를 입고 신식혼례를 올렸는데, 주례는 고희동, 사회는 시인 정지용과 화가 길진섭이 맡았다. 성북동에 살던 김용준의 집 ‘노시산방’을 물려받아 신혼 생활을 했는데, 김환기의 호 ‘수화’와 김향안의 ‘향안’에서 한 글자씩 따서 당호를 ‘수향산방’이라 하였다. 김환기와 함께 간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고, 1964년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김환기를 내조하였다. 1978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다. 저서로 『카페와 참종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등이 있다.
-
·수필가·미술평론가, 김환기의 아내
·본명 변동림(卞東琳), 서울 출생
·1930년대부터 문학활동을 하였고 1936년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과 결혼
·이상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이후 1944년 서양화가 김환기와 재혼하였으며 김환기 사후 남편의 유작을 돌보며 환기미술관을 설립
·1944년 결혼과 함께 성북리 274-1번지의 김용준의 집 ‘노시산방’을 물려받아 신혼 생활 시작
-
6. 성북동 문화예술인 주소지
이름: 김향안
주소(현재): 성북동 274-1, 성북동 31-2
분야: 문학(수필)
비고: 수향산방, 김환기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