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鍾岩第1洞〉
鍾岩第1洞은 「鍾岩路」(종암동3거리∼월곡동∼미아3거리) 동쪽 일대 鍾岩洞지역의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종암 제1동은 1936년 4월 1일 京城府에 편입된 후 鍾岩町會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鍾岩洞會로 바뀌었다. 1955년 4월 18일부터는 鍾岩洞事務所로 칭하게 되었는데 1970년 5월 18일(市條例 제613호) 「동장정원 및 명칭과 관할구역의 변경」에 따라 鍾岩洞은 鍾岩1洞과 鍾岩2洞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당시 종암 제1동의 관할구역은 종암동 중 「古山路」以西의 지역으로 정했다. 「古山路」는 현재 「종암로」의 전 가로명이다.
이 洞의 옛이름은 안말로서 慶州金氏와 鄭氏의 集姓村落이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 전일에는 서로 通婚조차 하지 않았다. 안말은 숭례국민학교 앞쪽을 큰 해창, 뒤쪽은 작은 해창이라고 칭했는데 해창이란 명칭은 조선 중기의 顯宗의 셋째 딸인 明安公主와 남편인 海昌尉 吳泰周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암 제1, 2동을 나누는 「종암로」는 말행길, 또는 큰 길이라고 했다. 옛날에 의정부 방면에서 서울로 들어오려면 미아3거리에서 길음교를 건너 미아리고개를 넘어 혜화문을 통해야 하거나 다른 하나는 미아3거리에서 「종암로」를 지나 마장동을 거쳐 동대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미아로」는 좁고 고개가 높아 도보로 이용하기에 펀리하고, 「종암로」는 말을 이용하거나 달구지 등이 다닐 수 있어서 말행길이라고 했지만 貞陵川이 범람하면 물에 잠겨서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하여 水路라고도 칭했다.
이 洞관내에는 종암경찰서와 성북소방서가 위치하고 교육기관으로는 종암여자중학교와 숭례국민학교가 있다.
광복 당시부터 1990년까지의 종암 제1동의 현황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802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1-8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