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 주민센터
장소 관공서
성북구 석관동 384-3(화랑로 296)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이 지역은 마을 동쪽에 있는 천장산의 한 맥에 검정 돌을 꽂아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 마을로 불렸으며, 이를 한문으로 표기한 데서 석관(石串)이라는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석관리가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1950년 동제의 실기로 석관동으로 개칭되었다. 1975년 구(區), 동(洞)의 담당구역이 재편성될 때 이문동 북쪽의 석관동 일부 지역이 동대문구 이문동에 편입되었고, 석관동은 석관제1·2동으로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석관동으로 통합되었으며, 현재 석관동 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73㎢, 인구수는 3만 5천여 명, 세대수는 16,235세대이다.
석관동
  • 석관2동 청사 준공식
  • 석관동 주민센터
  • 옛 석관1동사무소 준공식
  • 석관1동 청사
  • 2020 석관동 주민센터 정면
  • 2020 석관동 주민센터 입구
  • 2020 석관동 주민센터 쉼터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관공서

시기

주소

  • 주소: 02781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384-3 (화랑로 296)

근거자료 원문

  • 〈石串第1洞〉 石串 第1洞은 「이문로」 동쪽 일대의 석관동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이 洞은 장위제1동과 같이 1949년 8월 13일 서울市에 편입되었을 때 洞會가 설치되었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1953년 초에 長位洞會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서울市에 편입될 때도 동일했으리라고 본다. 이 당시의 장위동회는 장위동과 석관동 일대를 관할하고 있었으며, 그 후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 때 長石洞事務所로 바뀌었다. 이어서 1963년 1윌 1일 (市條例 제274호) 長石洞을 長位洞事務所와 石串洞事務所로 분리시킬 때 石串洞事務所에 속했으며 1975년 10월 1일(市條例 제981호) 석관동 중 상월곡동과 접하는 「장석로」를 따라 남진, 월곡로를 건너 이문로를 따라 남진하여 이문동과 접하는 도로 이동지역을 石串第1洞으로 하고 그 이외의 지역을 石串第2洞으로 정했다. 이 洞의 북쪽으로는 「화랑로」, 남북으로는 「里門路」(시조사∼외대앞∼석관국교), 「漢川路」가 지나고 있는데다가 남쪽과 북쪽 경계선 부근에 경원선 電鐵 新里門驛과 石漢購이 자리잡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신이문역과 석계역 사이의 철로 동쪽에는 동원연탄, 삼표연탄, 삼천리연탄, 정원연탄, 칠표연탄 등의 연탄 생산공장이 1962년부터 들어서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하루 150만개를 생산해서 서울시내의 연탄공급량의 1/2을 공급했으나 주택 난방 연료가 油類로 바뀌는데다가 이 공장에서 나오는 粉塵이 인근 주택가의 公害를 자아내어 民怨이 일어나므로 점차 市外로 이전해 가고 있다. 「한국일보」(’93.1.8) 에 의하면 이곳의 정원연탄은 이미 폐쇄되고, 1993년 1월 7일자로 삼표, 칠표 연탄공장이 폐쇄되므로서 16개소가 7개로 줄어들고 생산량도 30%가 축소되었는데 나머지 9개소도 서울市에서 연차적으로 폐쇄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1975년과 1990년의 석관제1동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819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18-819쪽
  • 〈石串第2洞〉 石串第2洞은 「里門路」서쪽 일대의 석관동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이 洞은 앞의 석관제1동의 沿革과 같으므로 1975년 10월 이전은 생략하고 1975년 10월 1일(市條例 제981호) 석관동 중 석관 제1동장 관할구역을 제외한 전역을 石串 第2洞의 관할구역으로 정해서 현재에 이르렀다. 「화랑로」변의 이 洞과 상월곡동 경계지역을 푸석골 또는 돌곶이말이라고 한다. 전에 성황당나무가 있는 고개를 푸석산이라 했기 때문에 푸석골이라고 칭했던 것으로 이 마을은 驪興(지금의 京畿道 驪州)閔氏들의 集姓마을로서 동네의 평안과 발전을 위해 푸석산에서 1년에 한번씩은 山祭를 지내고, 3년에 한번 큰굿을 하였다. 그러나 6.25동란 이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점차 모여 살게되므로서 驪興閔氏들의 集姓村落的인 성격도 차츰 퇴색되어졌고 山祭나 洞祭의 풍속도 사라졌다. 이 洞의 관내에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석관동 261-1) 가 있다. 1960년 5월 13일에 설립인가를 받아 1970년 8월 25일에 현재 위치로 이전했고 그 이듬해 고등학교 과정으로 인가되었다. 그리고 국민은행 석관동지점, 새소망예식장, 새석관시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1975년과 1990년의 석관 제2동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820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19-820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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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관동
    이야깃거리
    석관동
    분류: 장소
    시기: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