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 생활상과 관련된 설명이다. 정릉동은 조선시대에 척박한 농토에 적은 인구가 모여 살았던 농촌지역이었다. 또한 도성 안에 궁궐이나 기와집을 지을 때 정릉 일대의 돌을 사용하여, 조선시대부터 정릉동에는 채석장이 곳곳에 들어섰다. 이에 정릉동 일대에는 돌을 깨고 쌓거나 다듬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30년대부터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서울 외곽인 정릉리에도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전기가 가설되고 신작로가 놓였다. 기술의 발달로 중장비가 공사를 대신하고 돌로 축대를 만드는 일이 줄어들면서 돌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6.25 전쟁 휴전 이후에는 급격히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정릉동 등의 외곽지역에 공영주택 건설이 추진되었다. 정릉동은 고급주택단지로 부상하였으나, 일용직 노동자들의 무허가 판잣집 또한 늘어갔다. 1963년에는 성북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거주할 정도로 인구가 폭증하였는데, 197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인구 과밀 양상이 점차 완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