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용천(龍川) 사람이다.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1931년 상해로 망명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김 석(金晳)·서재현(徐載賢)·이규서(李圭瑞)·연충열(延忠烈)·한영려(韓英麗) 등과 상해한인청년당을 조직하여 그 이사에 선임되었으며, 일제 밀정 처단, 주요기관 폭파 등의 무력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는 또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김원봉(金元鳳)이 중국정부로부터 월3천원의 자금을 지원 받아 남경(南京)에 설립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의열단이 민족혁명당으로 통합 발전하게 됨에 따라 1935년 4월 동교 교관으로 보병조전(步兵操典), 소총·기관총 조립법 등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통합된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 그는 중국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 공군에 입대하여 기계사의 직책으로 대일전(對日戰)에 참가하였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창립하자 그는 제3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40년에 광복군이 창설됨에 따라 총사령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광복군 총사령부원으로서 중경(重慶)에서 요인 경호 및 비서직을 맡았으며, 1945년에는 미군과 합작으로 한국항공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국 광복으로 이 계획은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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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21 426 4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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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29·859·863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0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