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열
1888.03.09 - 1950.09.28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출신으로 1919년 진안 마령면 평지리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독려하는 격문 3통을 작성하여 게시판에 붙이고, 시위군중을 인솔하며 선두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해방 후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진안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에 위촉되었다. 같은 해 12월 조소앙 등과 함께 사회당 발기인대회에 참여했다. 1950년 8월, 전주를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의해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7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돈암1동에서 거주하였는데, 상세 지번은 확인할 수 없다.
돈암동

기본정보

시기

  • 시대: 조선시대
  • 시기: 1888.03.09 - 1950.09.28
  • 비고: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는 생년을 1889년으로 표기하였다.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 비고: 서울市 城北 敦巖 1洞 (상세주소 없음)

근거자료 원문

  • 전라북도 진안(鎭安) 사람이다. 1919년 4월 6일 전영상(全永祥)·김구영(金龜泳)·황해수(黃海水) 등과 함께 마령면 평지리(馬靈面平地里)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같은 마을 이성녀(李姓女)의 집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독려하는 격문 3통을 작성하여 게시판에 붙이고, 수백명의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그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이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4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46·547·633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512면
    독립유공자 공훈록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기술통제

  • 작성자: 김진흠
  • 작성일: 2020-06-22

관련 마을아카이브

  • 조소앙
    이야깃거리
    조소앙
    분류: 인물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