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애시덕
1892.03.20 - 1975.10.08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유관순과 함께 비밀결사인 여성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했고, 1920년 김활란 등과 7인전도회를 조직해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하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 결성에 참여하여 여성 권익옹호 및 사회풍토 개선활동을 했다. 1926년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망월구락부를 결성하여 사회주의 계열 여성운동과 협력을 모색했다. 이후에도 1927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회장 역임하고, 근우회의 결성준비에 참여하는 등 종교를 통한 여성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안암동 4가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상세 주소는 알 수 없다.
안암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洪愛施德
  • 이명칭: 洪五順, 홍에스터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 비고: 서울 城北 安岩 4街 (상세주소 없음)

근거자료 원문

  • 1912년 이화학당(梨花學堂)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여성계몽과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애국정신을 고취하였으며 1919년 유관순(柳寬順)과 함께 비밀결사 여성동지회(女性同志會)를 조직, 여성운동을 폈다고 한다. 1920년에는 김활란(金活蘭)·윤성덕(尹聖德) 등과 7인전도대(7人傳道隊)를 조직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펴다가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그는 1922년 6월 조선여자기독청년회(朝鮮女子基督靑年會 : YMCA)의 초대 부회장에 선임되어 동회를 이끌었으며, 1923년 9월 유각경(兪珏卿)·최활란(崔活蘭) 등과 함께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朝鮮基督敎女子節制會)의 결성에 참여하여 여성의 권익옹호 및 사회풍토 개선활동을 통해 여성의 지위향상에 힘썼다. 1926년 12월에는 김활란·방신영(方信榮) 등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망월구락부(望月俱樂部)를 결성하고 사회주의 계열 여성운동과 협력을 모색하였다. 1927년 1월에는 재경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在京東京女子留學生親睦會)의 발기총회준비위원에 선임되어 여성운동단체의 통합에 힘을 쏟았다. 동년 4월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로서 좌·우익 여성단체의 통일적 기관인 근우회(槿友會)의 결성준비에 참여하여 동년 5월 27일 창립총회에서 21명의 집행위원 중 한명으로 선임되어 김활란·이현경(李賢卿)과 함께 조사부를 맡아 여성의 지위향상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1928년 1월 상해(上海)에서 개최되는 감리교동아회(監理敎東亞會)에 김창준(金昌俊)·조병옥(趙炳玉) 등 교계대표 8인과 함께 한국교회대표단(韓國敎會代表團)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 그후 1935년부터 8·15광복 때까지 종교를 통한 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475·69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939·942면 동아일보(1927. 5. 31, 1928. 1. 1)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12면
    독립유공자 공훈록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 한자명은 애시덕(愛施德). 서울 출신. 아버지는 홍정후(洪正厚)이며, 어머니는 한메리이다. 아버지는 개신교 초기신자로 갑오개혁 때 활약한 개화파였다. 1912년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하고 이화보통학교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1917년에는 이화학당 대학본과에 입학하였다. 재학중 만주에 세워진 무관학교를 지원하기 위하여 여성들 중심의 동지회를 결성, 3·1운동 때에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20년김활란(金活蘭) 등과 이화7인전도대를 조직하고 북한지역에 순회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22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한편, 1923년 9월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를 발족시키고 초대회장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미감리회 여선교사들의 후원으로 미국 테네시주 스카릿대학 신학부에 유학, 1926년 졸업한 뒤 곧 귀국하여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였다. 1927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회장,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이사로 활약하였으며, 1931년 기독교조선감리회 여선교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어 광복될 때까지 역임하였다. 1935년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간부인 이명원(李命遠)과 혼인하였다. 광복 후에는 일제말에 중단되었던 여자기독교절제회운동을 다시 전개하여 1961년 제6대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이사, 대한부인회 서울본부 회장, 감리교총리원 부녀국장을 역임하였고, 말년에는 교회활동에 주력하였다. 1978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홍에스터(洪─)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253

기술통제

  • 작성자: 김지훈
  • 작성일: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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