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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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개인 종교인
고려시대의 승려이다. 경기도 이천 출생으로 출가하여 난원(爛圓)의 제자가 되었다. 고려 선종 2년(1085) 왕명으로 의천을 수행하여 송(宋)에 가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귀국후 의천이 속장경(續藏經)을 판각할 때 그 교정을 맡아보았다. 예종 2년(1107)에 예종의 왕사(王師)가 되었다. 화엄학의 대가로서 일승법(一乘法)을 선양하여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성북구 보문동 3-168번지에 있는 보문사는 예종 10년(1115)에 담진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비구니의 수련도장인 소규모의 암자였다. 비구니 사찰로 꾸준히 발전한 보문사는 1972년 대한불교 보문종을 창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문사를 창건하였다.
보문동
  • 보문사 전경(1)
  • 보문사 전경(2)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曇眞
  • 이명칭: 담진국사, 자정(子正)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종교인

시기

주소

  • 주소: 02874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 3가 168 보문사 (보문사길 20)
  • 비고: 보문사(활동)

근거자료 원문

  • ◎ 曇眞 생몰년 미상 高麗 睿宗 때의 國師. 성은 申氏, 자는 子正, 담진은 법명이다.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출가하여 爛圓의 제자가 되었다. 1068년(문종 22) 大選場에 응시하여 大德의 법계를 받았고, 난원이 입적한 뒤 역사 난원의 제자였던 義天의 법맥을 이었다. 숙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청하여 講主로 삼아 백일대회를 베풀었는데, 당시 청중이 수백명에 이르러 명성을 크게 떨쳤다. 1085년(선종 2) 왕명으로 의천을 수행, 宋나라로 가서 고승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귀국하여 의천이 續藏經을 판각할 때 그 교정을 맡아보았다. 1107년(예종 2) 에 예종의 王師가 되었고, 1114년 왕이 奉恩寺에 행차했을 때 國師가 되었으며, 1116년 普濟寺로 행차한 왕에게 설법하고 상을 받았다. 華嚴學의 대가로서 一乘法을 선양하여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般若寺址에 元景王師碑가 현존하고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렵다. 서울 城北區 普門洞 3-168에 普門寺가 있다. 고려 예종 10년(1115) 에 담진국사가 창건한 比丘尼의 수련도장인 소규모의 암자였다. 이후 여러차례 重築또는 改修가 있었다고 하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가, 朝鮮朝 肅宗18년(1692)에 묘첨스님이 重建, 英祖 33년(1757)에 보찬·유봉스님 이 大雄殿 修築, 純祖 26년(1826)에 정운스님이 左右增堂을 改築, 憲宗 8년(1872)에 영전스님이 다시 大雄殿 수축·萬歲樓 건립, 高宗 9년(1872)에 금훈스님이 左右僧堂 수축, 1930년에 긍탄스님이 左右僧堂수축·觀音殿 신축하였다. 그후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주지를 맡은 宋恩榮스님이 사찰을 크게 확장하여 三聖閣·選佛場·山靈閣·大鐘 및 梵鐘閣·極樂殿·普光殿·十王殿 등이 1970년까지 25년에 걸쳐 신축되었다. 비구니사찰로 꾸준히 발전한 보문사는 1972년 宗祖를 佛陀의 姨母 大愛道尼로, 所依經典을 觀音經으로 하여 ‘多聞에 의하여 지혜를 밝히고, 思惟에 입각해서 모든 事理를 바르게 簡擇決了 하며 實踐躬行에 따라 佛性을 陶治함’을 宗旨로 삼고 大韓佛敎 普門宗을 창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29-730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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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문사
    이야깃거리
    보문사
    분류: 장소, 유물
    시기: 고려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