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대동단
1919.03 - ?
인물 단체 독립운동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1919년 3월 일진회 회원이었던 전협과 최익환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으며, 귀족, 관계(官界), 유림, 종교계, 상공인, 청년학생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였다.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목적으로 사회각층의 인사들을 포섭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였다. 김가진은 의친왕 이강과 사돈 관계로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이종욱에게 의친왕의 서울 탈출을 위한 공작을 추진케 하였다. 1919년 11월 10일 의친왕 등 5명의 수색역을 출발해 만주 안동행 열차에 탑승하였으나 안동역에 도착할 무렵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동단 조직은 일망타진되었고, 이후 의친왕은 일제에 의해 성북동 별장(성락원)에서 유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성북구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朝鮮民族大同團
  • 이명칭: 대동단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단체 독립운동

시기

  • 시대: 일제강점기
  • 시기: 1919.03 - ?
  • 비고: 1919년 11월 의친왕 체포로 조직 와해

근거자료 원문

  • ○ 대동단의 의친왕 망명 시도 사건 - 대동단(大同團) ㆍ‘조선민족대동단’이라고도 하며 전 일진회 회원이었던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 민족의 대동단결을 표방하며 1919년 3월말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ㆍ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목적으로 사회각층의 인사들을 포섭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함. ㆍ본부를 상하이[上海]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제 1단계로 1919년 10월 10일 총재 김가진의 상하이 망명을 단행함. ㆍ제2단계로 11월 10일 의친왕 이강을 포섭하여 상하이 망명을 추진하였으나 일경에 발각되어 의친왕 일행이 체포됨으로써 많은 지도부 이하 많은 단원이 투옥되고 조직이 해산 지경에 이름. ㆍ1920년 3월 상하이에서 김가진·나창헌 등이 대동단본부를 재건하여 무장투쟁으로의 전환을 표명해 선전활동을 펴기도 했으나, 이후 큰 활동은 없었음.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3쪽
  • ­ 의친왕 망명 시도 사건 ㆍ대동단 총재 김가진은 의친왕 이강과 사돈 관계로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이종욱으로 하여금 의친왕의 서울 탈출을 위한 공작을 추진케 함. ㆍ1919년 11월 10일 의친왕 등 5명의 일행이 변장을 하고 수색역에서 안동행 열차 탑승했으나 신의주를 출발하여 안동역에 도착할 무렵 일경에 적발되어 체포됨. ㆍ이 사건으로 대동단 조직이 일망타진되었으며 이후 의친왕은 일제에 의하여 성북동 별장에서 유폐 생활을 함. ㆍ의친왕이 상해임시정부에 보낸 편지가 『민국일보』 1919년 12월 4일자에 ‘한국 태자의 일본에 대한 반감’이란 제목으로 게재됨. ㆍ이 편지에서 의친왕은 “나는 차라리 자유 한국의 한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정부의 한 친왕(親王)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우리 한인들에게 표시하고, 아울러 한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에 몸바치기를 원한다”며 자신의 심경을 고백함.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3-104쪽
  • ○ 최익환의 주도로 결성된 비밀결사단 대동단 -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서울에서는 비밀리에 독립운동단체 대동단이 조직됩니다. 황족, 유학자, 종교인, 상공인, 청년, 학생, 부녀자 등 각계각층의 단원들로 구성된 단체였지요. 이들은 창단 직후 약 1년 간 지하문서를 배포하고 전국 각지에 지부를 설치해 조직을 확대하는 등 활발한 독립활동을 진행합니다. 독립운동가 전협과 함께 대동단 결성을 주도한 최익환은 성북구의 주요 독립운동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대동단 활동으로 6년간 복역을 한 이후로도 신간회, 광복단 등에서 독립을 위해 힘을 쏟았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의 비밀요원으로까지 활동한 애국지사이지요. 대동단원들 중에는 주목해야 할 성북구의 독립운동가들이 꽤 많습니다. 의열단의 숨은 조력자로 알려진 오세덕, 임시정부의 요인이자 독립군양성에 헌신했던 김의한, 김의한의 아내이자 역시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여성 계몽운동에 힘썼던 정정화 등 모두 독립운동에 있어 큰 활약을 했던 성북인들입니다. 대동단의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일은 ‘의친왕 이강 상하이 망명 계획’입니다. 이들은 의친왕 이강을 상하이로 탈출시킨 후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추대하고 이를 통해 국내외 여론을 고취, 최종적으로 독립운동을 촉진시키려는 목표를 세웁니다. 안타깝게도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이 사건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50-52쪽
  • 정의 1919년 3월일진회(一進會) 회원 전협(全協)과 최익환(崔益煥)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던 단체. 개설 서울 봉익동(鳳翼洞) 62번지전협의 집에서 결성되었다.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대동단은 귀족, 관계(官界), 유림, 종교계, 상공인, 청년학생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였다. 그리하여 김찬규(金燦奎), 박영효(朴泳孝), 김가진(金嘉鎭), 민영달(閔泳達) 등이 가담하였다. 같은 해 4월 중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고,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평안,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지부를 설치하고 단원 모집과 자금 모집에 힘썼다. 기능과 역할 이 단체의 활동은 독립의식의 고양을 목적으로 한 선전활동과 삼일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거행하려 한 ‘제2회 독립만세시위’를 통해 특징 지워진다. 최익환은 권태석(權泰錫)의 도움으로 자금을 지원 받아 인쇄시설을 설치하고 선전문(宣傳文) 등을 인쇄 배포하였다. 그 가운데는 ‘일본이 한국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혈전(血戰)이라도 벌이자’는 포고문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23일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최익환, 권태석, 이능우(李能雨), 엄경섭(羅景燮), 김영철(金永喆) 등이 체포되었다. 이 단체의 활동 중 주목되는 것은 의친왕(義親王)이강(李堈)을 망명시켜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던 계획이다. 전협, 정남용(鄭南用), 김가진 등이 의친왕을 상해로 탈출시켜 수령(首領)으로 추대하고 제2차 독립선언을 발표해 국내외의 여론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을 촉진시키려는 목표였다. 이를 위해 같은 해 10월 10일 총재인 김가진과 전협이 먼저 상해로 탈출해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안창호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 같은 해 11월 9일 정남용, 이을규(李乙奎), 한기동(韓基東), 송세호(宋世浩) 등이 의친왕과 함께 수색역을 출발해 열차편으로 압록강을 통과해 11월 12일 만주 안동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의친왕의 탈출계획을 사전에 감지한 평안북도경찰부(平安北道警察部)에서 파견한 경부(警部) 미산(米山)에게 체포되어 임시정부 참여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친왕은 서울로 호송되고 전협, 정남용, 이을규 등이 차례로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대동단 사건의 주모자인 전협과 최익환은 징역 8년과 6년, 정남용, 이재호, 권태석 등 관련자 20여 명도 최고 5년에서 최하 2년까지 언도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조선민족대동단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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