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천 바로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 중에 강경에서 올라온 젓갈과 잡곡을 파는 ‘강경젓갈·잡곡’이 있다. 사장님은 1988년 결혼하면서 누나가 꽤 오래 하던 신발가게를 물려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2008년도에 정릉천 복개 부분을 걷어내고 천 주변을 정비했더니 가게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가게가 좁아져서 신발을 늘어놓을 공간이 없어지자 신발가게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되어 젓갈과 잡곡을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가게이다. 전북 군산이 고향이고 강경에 있는 친척분이 물건을 올려보내 주어서 상호를 ‘강경젓갈·잡곡’으로 지었다.
신발가게는 동네 장사였기에 아동화에서 어른 신발까지 다양했다. 말표, 왕자표 운동화, 구두, 편리화 등 다 있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IMF 이전에는 장사가 잘 되었으나 그 이후로 안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릉천 복개 시절엔 천 위인 가운데에 상가가 있었고, 양쪽 가에도 상가가 있었다. 천을 복구하면서 가운데 상가는 헐어서 개천이 드러났다. 당시 천 위의 있는 땅은 모두 나라 땅이었기 때문에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땅을 제외한 건물 보상금을 받았다. 세 들어 가게를 하던 사람들은 3개월 치 영업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건물이 헐리면서 장사를 오래 한 사람들은 나이도 있으니 대부분 떠났고, 일부는 가게를 접었으며, 건물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건물을 새로 짓기도 했다. 맞은 편에는 아주 낡고 오래된 집들이 있었는데 지금 보이는 깨끗한 건물들은 보상받아서 새로 지은 것들이다. 정릉천 복개 지역에는 금성대리점, 커다란 마트, 사철탕집, 떡방앗간, 메리야스 가게 등이 있었다. 할머니들이 잡다하게 약초 같은 것을 노점에서 팔기도 했는데 정릉천이 복구되면서 대부분 떠나셨다.
30여 년을 이곳에서 가게를 하다 보니 업종을 바꾼 후에도 가게가 있으니까 그냥 쉬엄쉬엄하고 있다. 늦둥이가 대학 4학년인데 그 아이가 자리 잡으면 가게는 접을 생각이다.
그래도 그만두는 날까지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