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상회
1975
장소 상업시설
성북구 종암로56(종암동 8-116)의 고려상가 가동에 위치한 가게이다. 쌀과 소금, 건어물 등을 판매하다가 현재는 건축설비 일을 하고 있다. 사장님은 1948년 생으로 종암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6년이었다. 4년 간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미곡상에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1974년에 결혼을 하고 1975년에 고려상회를 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마이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쌀장사가 하락세를 보였고, 소금도 수요가 차츰 줄어들었다. 2010년 고려상회가 문닫기 전까지 아내가 일을 맡아서 했고, 사장님은 건축설비를 틈틈이 했다고 한다. 지금도 고려상회 간판을 달고 있지만, 건축자재가 곳곳에 쌓여있다. 사장님은 종암동 제27통장을 무려 39년이나 하셨다고 한다.
종암동
  • 고려상회 옆간판
  • 고려상회 출입문의 온도계
  • 고려상회의 양곡매매업 신고필증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상업시설

시기

주소

  • 주소: 02800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 8-116 (종암로56)
  • 비고: 고려상가

근거자료 원문

  • 박대표 사장님은 1948년생으로 종암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6년인 19살 12월부터이다. 4년간은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미곡상에서 일을 했다. 이후 군대를 다녀왔고, 1974년에 결혼을 하고 1975년에 ‘고려상회’을 열었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품목을 알리는 간판에는 세월의 흔적만큼 쌀, 소금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건어물 도매시장이 생기고 없어지는 과정에 타격을 받거나 하지 않았는데, 1980년 대 중반 이후 ‘마이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쌀장사가 제일 먼저 하락세를 보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차를 끌고 시골에 가서 쌀을 가져와 사 먹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암동에는 3세대가 많이 살았는데, 핵가족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녀들을 분가시켜 쌀 수요가 줄어든 이유도 컸다. 소금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트럭으로 하나 가득 사 와서 일 년 동안 간수를 빼 팔았는데 쌀처럼 수요가 차츰 줄어들었다. 쌀과 소금을 주 품목으로 팔다가 고객들이 ‘이것도 있으면 좋겠어’하는 것들이 늘면서 오징어채 등 건어물을 팔기도 했다. 유리창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경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흥미로웠다. 쌀도 소금도 찾는 수요가 적어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눈썰미가 좋아 수도나 웬만한 것은 고칠 수 있었다. 2010년 고려상회를 완전히 문 닫기 전까지 아내가 일을 맡아서 했고, 자신은 건축설비를 틈틈이 했다고 한다. 가게는 ‘고려상회’ 간판을 여전히 달고 있지만, 현재는 건축자재가 곳곳에 쌓여 있다. 1975년 고려 상가 가동에 문을 열어 2010년 문을 닫기까지 꼬박 35년의 세월이다. 사장님은 종암동에 오래 산 만큼이나 제27통장을 무려 39년이나 하셨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아주 겸손해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누구보다도 고려상가나 종암동 구석구석을 아주 세세히 알고 계시고 기억도 정확하시다.

기술통제

  • 작성자: 김진흠
  • 작성일: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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