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림회
1960.03.06 - 1964.12
인물 단체 예술
1960년 부터 1964년까지 활동했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화 단체이다. 젊은 신진 작가들로 구성된 단체가 없었던 동양화단에 ‘한국 동양화단의 유일한 전위적 청년작가들의 집결체’로서 구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양식의 동양화를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회원들간의 의견 충돌로 인해 1964년 제8회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해산하였다. 묵림회의 회원이었던 박세원, 서세옥, 박노수, 정탁영 등은 196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성북동에 자리잡았고, 기존화단에 대한 비판과 새로움을 추구하였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墨林會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단체 예술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60.03.06 - 1964.12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근거자료 원문

  • 해방 이후, 전통 한국화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며 변화를 보인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의 박세원, 서세옥, 박노수, 정탁영 등이 만든 ‘묵림회’에서는 1960년 전통 수묵의 기법을 현대화하고 수묵추상화를 시도한다. 서울대 선후배이자 사제지간인 이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하나 둘 성북동에 자리 잡았다. 그림을 그리고 수석이나 민예품을 모으는 취미를 공유했다. 노석老石 신영상, 이석以石 임송희처럼 자신의 호에 돌 석石 자를 넣어 짓기도 했다. 1978년 발족한 성북장학회 활동과 성북구립미술관 전시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52쪽
  • ○ ‘묵림회(墨林會)’와 ‘한국화회(韓國畵會)’, 한국전쟁 이후 동양화의 전위를 형성 - 서울대(동숭동 소재) 미대 동양화과 출신 화가들, 가까운 성북에 이웃하며 모여 살기 시작 - 동양화단의 ‘앙팡테리블’ 박세원, 서세옥, 정탁영, 송영방, 임송희, 신영상, 이규선 등은 ‘수묵추상’이라는 동양화의 전위(가보지 않은 길) 개척 -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왜색 짙은 채색화 중심의 일본풍 동양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던 시기에 한국전쟁 이후 발표한 이들의 ‘수묵추상’은 화단의 거센 아방가르드적 충격파 ○ 대표 화가 - 장승업(1843-1897), 변관식(1899-1976), 장우성(1912-2005),박세원(1922-1999), 서세옥(1929- ), 신영상(1935- ), 임송희(1938- ), 송영방(1936- ), 정탁영(1937-2012), 이규선(1938-2014), 김기창(1913-2001), 박래현(1920-1976)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8-189쪽
  • 정의 1960∼1964년까지 활동했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화 단체. 설립목적 1961년 묵림회에서 아세아재단(亞細亞財團)에 제출한 원조자금 신청서에 게재된 내용으로 전해지는 이 단체의 설립목적은 기존화단에 대한 비판과 새로움의 추구였다. 1950년대 동양화단의 고루한 시각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폐단,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 사이의 대립에서 나타나는 화단의 파당성 등 기존화단의 문제점들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젊은 신진 작가들로 구성된 단체가 없었던 동양화단에 ‘한국 동양화단의 유일한 전위적 청년작가들의 집결체’로서 구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양식의 동양화를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원 및 변천 1959년 12월, 서세옥(徐世鈺)을 주축으로 민경갑(閔庚甲)·정탁영(鄭晫永)·전영화(全榮華) 등은 묵림회 창립을 위한 첫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명대(明代)의 유명한 수장가였던 항원변(項元汴, 1525∼1590)의 호인 ‘묵림(墨林)’을 인용하여 단체의 명칭을 ‘묵림회’로 명명했다. 1960년 3월 6일에 정식으로 발족한 묵림회는 이 달 22일부터 31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제1회 묵림회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에는 서세옥·민경갑·정탁영·전영화·박세원(朴世元)·권순일(權純一)·최애경(崔愛敬)·이영찬(李永燦)·이순영(李順瑛)·장선백(張善栢)·장운상(張雲祥)·이덕인(李德仁)·이정애(李廷愛)·남궁훈(南宮勳)·최종걸(崔鍾傑)·신성식(辛聖植) 등 16명이 참가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개최된 제2회 묵림회전에는 장운상·박세원·전영화·권순일·장선백·이영찬·이순영·이정애 등이 탈퇴하고 나머지 8명만이 참가하였다. 1961년 2월에 개최된 제3회 전시에는 차평리(車平里)·송영방(宋榮邦)·김상순(金相淳) 등이 새롭게 합류하였으며 같은 해 3월에 제4회, 6월에 제5회 전시를 개최하는 등 매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5회전부터는 안동숙(安東淑)과 금동원(琴東媛)과 같은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아닌 작가도 참여하면서 회원수는 증가하였으나, 1962년 이후에는 1년에 한 번으로 전시 횟수는 감소하였다. 1964년 12월 국립중앙공보관에서 개최된 제8회 전시는 30명이 참가했으나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해산하였다. 현황 묵림회 해체 후 대부분의 회원들이 다시 모여 1967년한국화회를 결성하였다. 한국화회는 2012년 제45회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동문전의 형태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세옥을 중심으로 한 동양화단 신진작가들의 의욕적인 모임이었던 묵림회는 이 단체를 주도했던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전통재료를 이용한 추상, 또는 반추상의 실험적인 작업이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작업양식의 연원에 대해서는 동양전통의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문인화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회화의 현대화를 모색하였던 것으로 보는 견해와 당시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등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 등 다양한 평가가 전개되고 있다. 묵림회는 양식면에서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묵림회를 계기로 대학 동문중심의 다양한 단체들을 결성하고 활동하면서 사숙(私塾)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기존의 동양화단의 풍토를 변화시켰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 묵림회(墨林會)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1790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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