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양도성 보수 복원
1975 - 1982
사건 도시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진행된 한양도성 복원공사이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개발의 미명아래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1960년대에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이 진행된 것은 이 사업이 처음이었다. 보수 복원은 성북지구, 삼선지구, 광희지구 등 8개 지구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때 성북구에 걸쳐 있는 구간인 성북지구(숙정문~혜화문)는 성곽 1,429m가 복원되었고, 삼선지구(혜화문~낙산 정상)는 성곽 1,037m 및 여장 1,033m가 복원되었다. 이 보수 복원은 한양도성이 더 훼손되는 것을 막고 당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문화재 가치 보존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고증 없이 단기간에 진행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성북동 삼선동
  • 대한뉴스 제1119호 '서울 성곽복원 보수공사'
  • 성북지구 성곽 보수현장
  • 성곽보수를 위한 성석 운반용 케이블카
  • 성북지구 성곽 보수현장
  • 성북지구 성곽 보수공사 중 뒤채움
  • 성북지구 성곽복원 전
  • 성북지구 성곽복원 후
  • 서울 성곽 성북지구 준공식(23)
  • 서울 성곽 성북지구 준공식(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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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성곽 성북지구 준공식(14)
  • 대한뉴스 제1119호 '서울 성곽복원 보수공사'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서울성곽 정화사업, 한양도성 복원공사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사건 도시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75 - 1982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근거자료 원문

  •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을 전후하여 무너졌는데, 혜화문과 같은 이유로 1928년 헐리고 말았다. 오늘날의 광희문은 1975년부터 진행된 복원공사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홍예석축虹霓石築을 해체하여 남쪽으로 15m 이동했고, 문루도 새로 지었다. 복원공사가 시작된 지 39년만인 2014년 2월 17일 일반에 개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수진 외 5인, 2014, 한양도성 역사산책, 75쪽
  • 한양도성 복원의 기치를 올리다. 도성 복원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창의문 좌측 성곽 보수, 1962년 숭례문 해체복원에 이어 1963년에는 인왕산 구간 성벽을 정비했고, 1970년에는 창의문을 보수햇으며, 1972년에는 창의문 동쪽에서 백악산 정상까지의 성곽도 보수하였다. 이렇게 부분적인 정비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도성 전체를 하나의 문화재로 다루어야 함을 인식하고 계획을 수립하여 보수를 진행한 것은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한양도성 복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갖고 추진한 사업이었다. 한양도성 복원에 관심갖게 된 것은 1968년 1월 21일 일어났던 1·21사태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조상이 물려준 관방官房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이 국민의식 속에 국가안보정신을 심는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정권 차원에서 ‘전통문화’와 ‘민족의식’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한 총력안보체제를 구축하려던 것이 배경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도성 보수 복원 사업 계획은 단순히 한양도성 만을 초점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국방 유적 보수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연계되어 진행된 것이었다.
    박수진 외 5인, 2014, 한양도성 역사산책, 223-224쪽
  • 당시 사업은 대통령 지시로 서울시에서 추진했으며, 사업추진단으로 ‘서울성곽 복원사업추진본부’와 ‘서울성곽복원위원회’를 조직했다. 서울성곽복원사업추진본부는 복원사업에 관련된 모든 업무 기능을 합리적으로 조정 통제하고 책임과 체계있는 집행을 기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 제1부시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그 아래 성곽복원 담당관, 조경녹지담당관, 도시계획담당관, 건물철거담당관, 도로시설담당관 등을 두어 사업을 추진하고 문제점 해결과 사업을 평가 분석하도록하였다. 서울성곽복원위원회는 시장의 자문에 응하여 서울성곽 복원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는데 목적을 두고 사학자 언론인 문화재전문가 도시계획전문가 조경전문가 건축토목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현재 상태에 대한 조사를 통해, 도성 총 18.627㎞ 중 7.287㎞가 현존하고 10.094㎞가 복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화공보부와 서울시는 도성을 성북지구, 삼선지구, 광희지구, 장충지구, 남산지구, 삼청지구, 청운지구 총 7개 공사 지역으로 나누고 성곽 6.711㎞의 보수, 성곽 746m 및 여장 6.783㎞의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이루어진 대규모 복원공사의 결과 복원된 도성의 총 연장길이는 약 10㎞에 달했다. 공사에 들어간 총 비용은 55억 5,906만원이었다. 각 지부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박수진 외 5인, 2014, 한양도성 역사산책, 224-225쪽
    표 <1975~1982년 서울성곽 복원사업 내역>은 근거기록물 원문 225쪽에 실려있다. 1974년 10월 수립된 계획에는 7개 지구의 복원이 계획되었으나 1975년 1월 17일자로 문화공보부에 보고한 변경계획에는 동숭지구가 추가되어 총 8개 지구의 복원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한다.(조은주, 2017, 「국가기록원 기록물을 통해 본 해방이후 한양도성 보수복원 사업 1970~90년대 추진 사업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66, 85쪽 참고)
  • 1970년대 시작된 대규모 복원공사는 여러 가지 효과를 낳았다. 이전까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한국사회에서 문화재 행정을 확대시켰다. 한양도성에 인접해 있던 유·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녹지를 조성하면서 도성의 훼손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성곽 복원을 하면서 기존 성곽의 원형을 고증하 여 복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여러 측면에서 원형 복원의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이 시기에 행해진 한양도성 보수·복원 사업은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한계점을 지닌다. 문화재 가치 보존보다도 안보의식 고취 목적이 더 강했고, 충분한 원형 고증 없이 비체계적인 복원 절차가 진행되기도 했다. 안보 강화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결과, 인왕산과 백악 구간에는 성벽 복원 시에 성벽 안쪽 으로 군 초소를 설치해 복원공사가 오히려 한양도성의 원형을 파괴하고 미학적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켰다. 그리고 문화재 복원을 위해 충분한 사전조사가 필요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관심사항이었기에, 대통령 지시 이후 겨우 2달 만에 광 희문 공사에 착수하고, 삼청지구, 성북지구 등은 3개월 만에 공사를 마치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광희문은 도로 교통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이전 복원되었다. 문화재 보수에 성급하게 콘크리트를 남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1970년대 한양도성 복원이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되새기며 추진되기보다는 일정하게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데 연유한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지시에 부합해 급박하게 추진되었고, 원형을 복원하기보다는 편의주의적으로 접근한 측면이 많다. 문화재 원형보다는 안보가 앞섰고, 도시의 교통이 앞섰다.
    박수진 외 5인, 2014, 한양도성 역사산책, 226-227쪽
  • ○ 1960~70년대 성북동 관련 신문기사(중앙일보) ㆍ서울성곽의 복원에 따른 주택 철거 문공부의 국방 유적 복원 시책에 따라 서울시는 올해 시비 5억2천만원을 들여 서울 성북지구 성곽 2천60m를 복원한다. 복원에 걸리는 건물들을 보상 철거하고 산책 도로, 녹지 시설 등의 주변 정화 사업도 병행하게 될 성북지구 성곽 복원 공사는 오는 8월초 착공 예정. 성곽 복원 공사로 보상 철거될 건물은 성곽에 접해 있는 성북동 113의 1, 3, 4, 5, 8, 11의 무허 건물 80동과 성북동 123의 2∼5까지의 유허 건물 18동, 사유지 3백평 (성북동 113의 76, 123의 3) 등이다. 감사원 뒷산에서부터 혜화국민학교 뒷산을 지나 보성고교 후문 (종로구 혜화동 산 6의 1)까지 이어질 성북지구 성곽 복원 공사는 금년 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문공부 문화재 관리국이 고증 등을 후원하고 서울시가 총 4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6개년계획 (74년∼79년)으로 추진중인 서을 성곽 복원 공사 총 목표 길이는 성곽 1만1천4백24m와 광희문·숙정문 등 2개의 성문. 문헌 기록에 나타나 있는 서울 성곽의 총 연장 길이는 1만8천1백27m. 서울시는 이중에서 성곽의 흔적이 현존하고 있는 부분만을 복원한다. 현재까지 복원된 것은 지난해 11월 4천6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광희문뿐이다. 현재 45% 정도의 공사가 진행된 삼청 지구 성곽 1천9백94m와 목조 12평의 숙정문은 오는 7월31일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올해 착공되는 성북지구 성곽과 광희문 옆 성곽 50m가 완성되면 76년까지 복원되는 서울성곽은 약 4km. 광희지구 성곽복원에는 광희동 l09의 1, 5동의 무허 건물 10동과 신당동 229의 46, 40동 유허 건물 20동, 사유지 2백50평이 보상 철거된다. (1976.02.1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56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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