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이 있는 산동네 언덕을 한참 동안 내려오면 길음시장의 좌판이 시작되었다. 길음시장에는 더 이상 갈데없는 팔도 사람들이 조그만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했다. 그래서 길음시장은 서울에 있었지만 서울이 아니었다. 시골장터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어둠이 내리면 싸구려 소리가 유난히 커지던 곳.
쩔거덕 쩔거덕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
상쇠의 쇠가락에 따라 농악 십이차 장단이 울려 퍼지면,
너름새 춤사위에 신명을 풀던 시장 사람들.
길가에 돌아 앉아 아가에게 젖을 먹이는 채소 파는 아줌마.
햇볕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얼굴로 '뻥이요!' 소리치던 뻥튀기 아저씨. 뽀르르 물러서서 귀를 막고 서 있던 조무래기들.
철망 안으로 '뻥'하고 쏟아지던 하얀 튀밥들.
네모난 통을 어깨에 메고 '아이스께끼, 께끼나 하드'를 외치던 떼꾼한 눈빛들.
노란 달빛을 밟으며 파장하는 시장 사람들은 길음시장의 명멸하는 희망이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을 미아리에서 보냈는데, 미아리와 가까운 길음시장에서의 이야기도 등장하여 당시의 풍경과 정취를 떠올려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