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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다. 성북동 아빠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혜화역이나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나는 종종 혜화역에서 내려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 골목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마로니에공원에서 하겐다즈나 맥도날드 선데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30분 넘게 걸어서 아빠의 집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피, 속수무책이다. 나는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곧바로 마을버스를 타기로 한다. 지하철역 승강장과 통로와 계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쳐간다. 역시 이 시간에 내 또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화자의 엄마가 사는 대치동(3호선 대치역)에서 아빠가 사는 성북동(4호선 한성대입구역)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여정이 묘사된다. 사춘기 소녀에게는 초경을 시작한 특별한 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불안함과 낯선 감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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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집, 넓은 마당이 있고 높은 담장이 있는 크고 오래된 이층집,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던 집, 모든 게 우아하고 품위 있게 낡은 멋진 집, 아빠의 작업실과 내 꼭대기방과 근사하고 아름다운 가구들이 있는 집, 내가 좋아하는 성북동 집, 그런데 아빠는 집에 없다.
화자의 아빠는 클래식음악을 전공하고 현재 영화, 광고,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이다. 요리, 사진, 그림에서도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는 섬세한 사람이다. 이 집을 물려준 할아버지는 생전에 출판사 사장이었고, 할머니는 미술을 전공하고 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했었다. 즉, 이 글에서 성북동 단독주택은 집안에 작업실을 갖춘 예술가 가족이 사는 곳으로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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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엄마의 집, 주상복합아파트 21층. 성북동 집과는 많이 다르지만, 역시 이곳도 내가 살아가는 나의 집이다. 먹고 자고 공부하고 티브이 보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의 집이다. 성북동 집과 마찬가지로 이 집에도 내 방이 있고, 내 옷장과 책상과 침대와 컴퓨터가 있고, 내 칫솔이 있다.
변호사인 엄마가 사는 대치동의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와 예술가 아빠가 사는 성북동 2층집이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