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에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다가 잠깐 다리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바지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을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그이 아들은 어머니의 손자와 친구여서
둘은 서로 아들 자랑 손자 자랑도 하고 험담도 하고
그러다보면 한나절이 나고,
동태 두어마리 사들고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
어머니의 하루는 저물었다.
강남에 사는 딸과 아들한테 한번 가는 길이 없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오가면서도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듣고 보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더 멀리 갈 일이 무엇이냐는 것일 텐데.
1982년, 신경림 시인은 언덕에 자리한 정릉동 동방주택으로 이사하였다. 폭우로 피해를 입기도 하고, 교통도 편치 않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에게 오랜 세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30년 세월 동안 어머니의 일상은 정릉 집에서 1km 남짓 떨어진 길음시장을 오가며 그 길에서 만난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시인 본인보다 어머니가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들었을 것임을 세월이 흘러서야 깨닫게 된다. 매일 다니던 그 좁고 짧은 길에서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본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