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세상 뜨고
길음성당 안팎의 늦추위
점박이 눈이 내리고
길음시장의 생선가게들을 지나
목판 위에서 눈 껌벅이는
(자세히 보면 껌뻑이지 않는)
모두 입벌린
(한꺼번에 숨막혀 죽은)
생선들을 지나
얼어 있는 언덕을 올랐다
황동규 시인이 김종삼 시인의 장례미사가 열리는 길음동성당을 찾아가던 날은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친 1984년 12월이었다. 현재의 모습과 달리 그 당시에는 허름한 길음시장 건물 곁을 지나야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황동규는 그 건물 안에 잠시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고 한다. 몸을 녹이면서 작가의 시선을 끈 것은 누워있는, 즉 죽은 생선들이었고 밖에는 점박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2002년 발표한 그의 에세이 「보헤미안」에 따르면, 이 시에서 여기저기 괄호가 쳐진 것은 당시에 황동규가 느꼈던 답답한 감정이 투영된 것이다. 그는 김종삼과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다방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몇 번 같이 차를 마셨던 정도였지만, 그는 김종삼의 시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파괴와 자유를 누리고 '댄디즘'까지 갖춘 보헤미안으로서의 김종삼도 좋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