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벌레도 못 되면서 교칙에 정해진 일이라면 머리 꼬랑이 길이가 정해진 길이에서 1센티만 넘어도 벌벌 떠는 소심한 모범생이었다. 그런 내가 잘못 걸리면 정학을 당할지도 모르는 짓을 예사로 저질렀는데 그건 학생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일이었다. 그 비용을 위해 예사로 엄마를 속였다. 학교 근처에 꽤 괜찮은 외화만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재개봉관이 있는 것도 내 일탈을 도왔다. 당시 숙명여고는 수송동에 있었고, 거기서 지척인 종로네거리에 있는 화신백화점 5층이 바로 그 재개봉관이었다. 집이 있는 돈암동에 새로 생긴 동도극장도 당시의 나의 단골 영화관이었다. 학생 관람 불가 영화라고 해서 학생에게 극장표를 안 파는 일은 없었다. 훈육주임 선생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되었다.
박완서가 살았던 돈암동에는 개봉관에서 내린 영화를 저렴한 가격에 상영하던 재개봉 전용 극장인 '동도극장'이 있었다. 1948년에 개관하고 1981년에 문을 닫아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문화공간이다. 박완서 역시 숙명여고 재학 시절부터 동도극장을 즐겨 찾았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남자네 집』(2004) 등 그의 자전적 소설에도 동도극장에 대한 회상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