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수
1925.07.28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8, 9월 중순경에 지인인 전태현의 집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결의를 하고 조선의 왕이 조선인이라면 조선독립에 당연히 왕위에 복귀해야 한다는 ‘왕족에 대한 불경언동’을 하여 체포되었다. 돈암정 산 65-18에 거주하였다.
돈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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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 비고: 경성부 돈암정 산 65-18

근거자료 원문

  • 본적: 경기 옹진군 서면 읍저 421 주소: 경성부 돈암정 산 65-18 계열과 단체: 학생운동, 시국담 <활동 내용> 배재중학교 1학년. 1940년 8, 9월 중순경 전태현의 집에서 모여 李鍾浩, 全泰賢, 趙在弘, 殷仁寬, 朴炯洛 일미관계와 지나사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현재는 중국군의 전황이 불리하지만 소련군이 중국군을 원조하여 양국이 일본군을 공격하면 일본패전은 필연의 정세이다. 그러니 이 정세를 타고 조선독립을 실현해야한다. 현재 조선독립당원의 다수가 소련 적군에 합류하여 있음으로써 소련군과 중국군의 일본군 공격에 즈음하여 우리 조선인은 일치단결하여 소련군과 중국군에 가담하여 조선독립을 용이하게 하자고 결의하였다. 조선의 왕을 귀환시키지 않는 것은 현재 일본인을 처로 삼아 일본에 거주하고 조선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조선에 돌아온다면 조선인으로부터 위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전하도 조선인이라면 조선독립의 새벽에는 당연히 왕위에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른바 ‘왕족에 대한 불경언동’을 하여 체포되었다. <특이사항> 창씨명 辰居武俊 <참고문헌> 「문화학원 및 중동학교 생도등의 불경 및 불온행동에 관한 건」(1940.11.04.) 『사상에 관한 정보』 12, 국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치안유지법위반 보안법위반 및 조언비어사건(造言蜚語事件) 검거에 관한 건(http://db.history.go.kr/id/had_166_0210)에는 창씨명이 '辰居武俊'이라고 적혀 있으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창씨명이 '辰井武俊'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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