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화자는 둥지가 아닌 못 하나에 의지하여 꾸벅거리는 제비 한 마리를 보면서 문득 어린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실업자가 된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종암동 버스정류장에 나가 퇴근하는 아내를 맞이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세상의 '흙바람' 속에서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아버지는 늘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현재-과거-현재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현재 시점의 아비 제비와 과거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 세상 아버지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한다. 참고로, 시인은 훗날 펴낸 산문집 『반통의 물』(창작과비평사, 1999)과 『저 불빛들을 기억해』(하늘바람별, 2012)에서 종암동에 대한 어릴 적 기억과 「못 위의 잠」의 창작 배경을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