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이란 사람 어디 있나요? 좀 만나봅시다."
"만나보시기 힘들걸요. 우리도 아직 한 번도 본 일이 없으니까."
"이 집 뜯으라고 시켰다며요?"
"모르시는군. 전설 같은 여자가 하나 있어요. 얼굴 없는 여자가. 그 여자가 전령을 보내 우리한테 명령을 내려요. 이 집 뜯어라, 저 집 고쳐라 하고."
정기오는 그제야 펀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재빨리 되물었다.
"아니, 아리랑고개 가는 데 집 또 한 채 가지고 있는 여자 말인가요?"
"거기뿐일까. 서울 시내에 그 여자 집 없는 데가 어딨어. 아파트만 해도 여러 채 되는데."
"그래요?"
"하기야 그런 여편네가 한둘일까."
정기오와 김씨가 부리나케 찾아간 돈암동 집은 일수놀이 고리대금업을 하는 여인에게 경매로 넘어간 집이었고,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정기오는 방향을 돌려, 김씨가 현재 세 들어 살고 있는 방에 이사 올 사람을 찾으러 흑석동으로, 또 흑석동으로 이사 올 사람이 산다는 상도동으로 달려간다. 상도동 집을 철거하고 새로 건물을 올리는 집주인은 알고 보니 돈암동 집을 낙찰받은 '얼굴 없는' 그 여인이었다. 투기를 목적으로 한 다주택 소유자들이 많았기에 서민들의 주거지가 더욱이 부족했던 시대상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