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은 독자가 투고하는 글을 싣는 란이었다. ‘성북적천城北赤泉’이라는 가명을쓴 사람이 삼산학교의 상황을 알리는 글을 투고했다. 이 기사의 시작 부분을 길지만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군아 보라! 배우겠다고 부르짖는 현재의 향학열을 보라.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여 애쓰는 저분들은 누구며, 제군과 같이 소작인 의 작물을 가지고 금의옥식錦衣玉食으로 지내는 자는 누구인가. 각성하여라 다 같은 백의인으로 동족인 제군은 제14회의 졸업생을 내는 성북리 삼산학교에 대하여 한 점의 동정하는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니 한심하지 아니 한가. 전 교주 황수연씨가 죽은 뒤 성북리 주민의 열성과 숭인면 면장 김기택金基宅씨, 안응선安應善씨의 노심초사로 겨우 유지하였다.
(1925년 3월 9일자 동아일보에 성북적천城北赤泉이라는 사람은 삼산학교를 도울 것을 호소하는 글을 기고했다.)
위의 기사에서 삼산학교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기가 높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학교의 운영 상황은 좋지 않았다. 숭인면 면장과 일부 지역 사람들이 동분서주하며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산학교의 선생이었던 박명환은 무급이거나 매우 적은 봉급을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쳤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