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술
1922 - 1989
국가무형문화재
인물 개인 음악가
유물 무형문화재
석관동에 거주했던 국가무형무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이다. 전라남도 구례 출생으로 판소리 명창 만조의 아들이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 박만조와 박봉채에게서 동편제 판소리를 전수받았다. 1940년 명창 임방울이 이끌던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정광수, 박초월 등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판소리 사설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 순천 국악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쳤고, 1973년 11월 1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박봉술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다섯 바탕소리에 고르게 뛰어난 기량을 보유했으며, 이 가운데 네 바탕을 음반으로 남겨 후대에 전했다.
석관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국가무형문화재
  • 지정일: 1973.11.11
  • 비고: 1989.12.11 보유자 사망으로 인해 해제

근거자료 원문

  • 판소리 동편제 명창이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판소리 명창이었던 아버지 박만조와 둘째 형 박봉채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았다. 소리 연습을 지나치게 하다 목이 상하자, 탁하고 고음을 내지 않는 암성(가성)으로 소리를 냈다. 1940년 명창 임방울이 이끌던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정광수, 박초월 등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섬진강 동쪽 구례, 남원, 곡성 등지에서 불리는 판소리인 동편제는 웅장하고 진중하며, 끝마무리를 딱 끊어 떨어지게 하는 특징을 지닌다. 송만갑-박봉술-송순섭으로 동편제 계보가 이어진다. 판소리 사설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 순천 국악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쳤고, 박봉술에게 사사한 안숙선, 김일구 등도 스승을 이어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73쪽
  • 정의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개설 호는 청운(靑雲). 전라남도 구례 출생. 판소리 명창 만조(萬朝)의 넷째 아들이며 역시 판소리 명창 봉래(奉來)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전라남도 순천과 부산 등지에서 살다가 1970년 서울에 올라왔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큰형 봉래로부터 소리를 배우다가 형이 일찍 죽자 아버지 만조와 둘째형 봉채(奉採)로부터 동편제(東便制) 판소리를 터득하였다. 어려서 잠시 서울에 올라와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서 송만갑(宋萬甲)으로부터 소리를 배운 적이 있다. 소년 시절에 목이 좋고 공력이 있어 시골에서 소년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과도하게 수련을 하다가 목을 다쳐 고음을 내지 못하는 비운을 겪었다. 한동안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지냈으나 재기하여 천신만고 끝에 다시 목을 얻었지만, 그래도 목이 탁하고 고음이 나지 않아서 암성(가성)으로 소리하였다. 공력이 대단하여 젊은층보다 판소리를 깊이 들을 줄 아는 고로들이 그의 소리를 좋아하였다. 1953년부터 순천에서 오랫동안 국악원 판소리 사범으로 제자를 가르친 것을 비롯하여, 목포·전주·군산·부산 등지를 전전하며 국악원 사범으로 있었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어느 명창보다 순수한 동편제 판소리를 계승하였고 판소리 다섯마당을 다 불렀는데, 특히 「흥보가」·「수궁가」·「적벽가」에 출중하였고, 「춘향가」도 더러 공연하였으나 「심청가」는 그리 능하지 못하여 공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1961년 서울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흥보가」·「적벽가」·「수궁가」·「심청가」를 각각 대목소리로 음반에 취입한 것을 비롯하여 문화재관리국에서 출판한 『한국의 음악』이라는 문화재 음반전집에 「적벽가」를 취입하였고, 뿌리깊은나무에서 제작한 판소리 다섯마당에 「흥보가」·「수궁가」를 취입하였다. 문하에서 송순섭(宋順燮)·김일구(金一求)·안숙선(安淑善) 등 여러 명창이 나왔는데, 송순섭·김일구가 그를 계승하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박봉술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