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목
1918.08 - 2010.07.13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인물 개인 언론인
성북동에서 활동한 언론인, 통일운동가이다. 한국전쟁 당시 박진목은 최익환과 함께 민간인 신분으로 비공식적으로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이승엽을 만나 전쟁 종결과 평화를 촉구하였다. 북한군의 퇴각 후에는 미군의 주선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으나 북측 지도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억류되었다가 1953년 초에 남쪽으로 돌아왔다. 박진목은 간첩죄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최익환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승만 정권의 핍박 속에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성북동은 그들이 활동한 종전평화운동의 중심 공간이었다.
성북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60번지
  • 비고: 최익환의 집에 거주

근거자료 원문

  • 2. 한국전쟁 중의 종전평화운동 ○ 최익환(1889~1959, 성북동 260번지)과 박진목(1918~2010) 한국전쟁 중에 최익환과 박진목이 민간인 신분으로 비공식적으로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 조속한 전쟁 종결과 평화를 촉구. 이 운동의 주역인 최익환은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않고 성북동 자택에 머물고 있었고, 박진목이 그의 집을 찾아와 상의하면서 시작. 한국전쟁 중 최익환과 박진목은 성북동 최익환의 집에 묵으면서 더 이상 전쟁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전쟁을 말려보는 일을 해보기로 함. 1951년 1월 최익환은 박진목과 함께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이승엽을 만나 동족 상잔의 전쟁을 당장 종식시키자고 호소했고, 이승엽이 이 제안을 긍적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답변. 북한군이 퇴각하고 난 뒤 최익환은 부산으로 내려가 이승만을 만나 협조를 요청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군의 주선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종전을 호소. 1951년 11월 미군의 안내로 평양을 방문한 최익환은 이승엽이나 북측 지도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평양 근교에 억류되어 있다가 휴전협정 직전인 1953년 초에 남쪽으로 돌아옴. 남으로 돌아온 박진목은 간첩죄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최익환은 독립투쟁의 경력이 고려되어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승만 정권의 핍박 속에 불우한 일생을 마침. 최익환과 박진목의 종전평화운동은 남과 북 그 어느 쪽에서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목숨을 걸고 분단선을 넘어 민족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한 그 고귀한 노력은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할 것. 최익환과 박진목이 활동한 종전평화운동의 중심 공간으로서 성북동의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음.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49-150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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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익환
    이야깃거리
    최익환
    분류: 인물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