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암동 채석장
장소 자연지리
1960년대까지 개운산에 있었던 채석장이다. 종암1동에 거주하는 진씨(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었기에 개운산을 ‘진석산(陳石山)’으로도 불렀다. 진석산은 양질의 석재 산출지로 예로부터 유명하여 일찍부터 채석업과 석재 가공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진석산의 돌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현 종암중학교 자리에 있던 '중앙산업'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1958) 등을 지을 때 종암동 채석장의 돌을 사용하였다. 또한 인근 고려대학교의 석조건물 건축 당시 종암동 채석장에서 돌(화강암)을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도 개운초등학교와 종암중학교 주변에서 채석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종암동
  • 종암동 채석장 흔적 (종암로19길)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자연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
  • 비고: 개운산 일대

근거자료 원문

  • 일부 양반들은 주택을 호화롭게 짓고자 하였다. 건축 자재로 나무를 쓰기 보다는 석재를 원하였다. 안암동의 陳石山이나, 길음동의 큰돌산은 양질의 돌로 이루어진 바위산이었다. 돌의 질이나 빛깔이 매우 좋아 세도양반이나 돈이 많은 부자들은 이곳의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자 하였다. 특히 陳石山의 돌은 일제 때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하였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408쪽
  • 종암동의 서쪽지역(종암제1동 지역)은 日出峯과 채석장으로 사용한 陳石山이 있고 그밑에 주택가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광복 전까지 나무가 울창했으나 광복 후 越南民들이 정착하면서 벌목하고 6·25동란 때 전투로 나무가 타버려서 민둥산이 되었다. 陳石山은 陳氏가 이 산을 소유하여 이름이 붙여졌는데 1960년경까지도 石質이 좋아 고급주택을 지을 때 이 돌을 사용하였고 국립박물관을 건축할 때도 일부 사용되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0쪽

기술통제

  • 작성자: 염현주
  • 작성일: 2022-07-08
  • 수정자: 백승민
  • 수정일: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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