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범수
1911 - 1984.07
인물 개인 음악가
성북구 석관동에 거주했던 대금·해금·퉁애 연주자이다.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10세 때 김원삼의 퉁소 소리에 반해 그에게서 퉁소와 단소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1926년에는 단소 명인 윤종선을 사사하였다. 1930년대 라디오에서 대금산조의 시조로 꼽히는 박종기(朴鍾基)의 대금산조를 듣고 감명받아 서울로 찾아와 대금을 잠깐 배웠으나 박종기가 여러 곳으로 다니는 관계로 유성기 음반을 들으며 대금산조를 자습한 뒤 1938년 박종기를 찾아갔다고 한다. 1947년 6월 여성국극협회에 입단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여러 단체에 참여해 대금 예술을 국내외에 소개하였다. 1964년부터 국립국악원 국악사양성소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강사로 있으며 후진을 양성하였고, 1975년 5월부터는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대금을 가르쳤다. 1981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투병하다가 석관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석관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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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음악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근거자료 원문

  • 대금산조·해금산조·퉁애산조의 명인. 본관은 청주(淸州). 충청남도 서산 출생. 10세 전후에 단소를 배웠고, 20세 전후하여 지방명인들로부터 대금산조를 배우다가 박종기(朴鍾基)에게 잠깐 배운 바 있다. 박종기와 한주환(韓周煥)의 대금가락을 토대로 하여 한범수류의 대금산조를 개척하였다. 1964년 이후 국립국악원의 국악사양성소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로 출강하면서 대금산조를 강의하는 한편, 그의 대금산조를 토대로 하여 해금산조를 짜서 해금산조도 강의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대금산조·해금산조의 명인이 나왔다. 1966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강사로 있었다. 그는 젊어서 유동초(柳東初)로부터 퉁소시나위를 이어받아 퉁소산조도 만들었으나 후계자가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한범수 (韓範洙)(검색일: 2023.3.30.),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37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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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인물, 유물
    시기: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