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출자하여 공동의 집을 얻고 교사채용부터 시설관리, 재정관리, 원아모집까지 모두 도맡아 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어린이집이다.
1990년대 중반, 내 집 같은 환경에서 좋은 먹을거리를 먹이고 자연에서 놀게 하며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으로 키우는 공동체를 원하던 부모들이 모여 서울 신촌에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개원한 이래로 전국 각지에 현재까지 70여 곳이 운영 중이다.
성북구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립의 움직임이 생겨난 건 2000년 즈음이다. 뜻 맞는 11가구가 출자를 하고 일부는 대출을 받아 정릉2동 교수단지에 터를 잡았다. 30년 된 노후한 2층 주택을 매입하여 부모들이 직접 고치고 꾸몄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부모와 교사는 노사관계가 아니다. 교사는 급여를 받지만 자신의 교육자원을 출자함으로써 부모와 같은 조합원이 된다.
어린이집 식구가 되면 부모들은 운영, 시설, 재정, 홍보, 교육 소위원회 중 하나에 소속되어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한다. 각 소위별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어린이집 운영을 논의하고, 각 방의 담임선생님과 부모들도 따로 모여 아이들의 보육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모든 조합원은 순환제로 소위에서 장이 되거나 방장을 맡음으로써 어린이집 운영에 관한 책임을 나누며 일 년에 두 번 정기총회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주요 사항을 직접 결정한다. 이밖에도 조합원 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이런 모든 참여방식은 조합원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스스로 만든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성북구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흙마당이 있고 오래된 골목길로 둘러싸여 있으며 무엇보다 바로 근처에 정릉이라는 최고의 자연놀이터가 있어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자랑거리이다. 핵가족화된 시대에 사는 요즘 사람들, 자기 가족 말고 다른 가족과 관계맺기가 어디 쉬운가. 하지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같이 모여 오곡밥을 지어먹고 단오에는 세시풍습을 함께 하며 잔치를 벌인다. 또 초여름이 되면 단체모꼬지를 가고 추석에는 아이들과 같이 송편을 빚고 김장철이 되면 모든 조합원들이 주말에 어린이집에 나와 아이들이 먹을 1년 치의 김치를 함께 담근다. 아빠들이 어린이집 마당에 김칫독을 묻고 갓 담근 김치로 보쌈파티를 할 때의 즐거움이란!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 보니 품앗이 문화가 자연스레 정착되어 누군가 “오늘 저녁 우리 아이 좀 봐 주실 분?”하고 부탁하면 누구라도 여력이 되는 사람이 나선다.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도 한다.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 가슴을 졸이며 아이 걱정을 하던 시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지 몰라 혼자 고민하던 시절, 직장 다니느라 동네에 아는 이웃하나 없고 급한 일 있을 때 어디 부탁할 데가 없어 울고 싶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부모와 아이, 선생님이 모두 한 식구처럼 지낸 공동육아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