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천
2013.05.30
인물 단체 주민자치
성북동의 주민, 단체, 예술인들이 결성한 마을 공동체 모임이다. 선잠로 12-6에 조그마한 모임장소를 두고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마을학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2013년 11월 창간호를 낸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를 발행하고 있다. 내용은 성북동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골목 기행, 문화재 탐방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성북동 주민센터와 성북동의 작은 가게들에서 무료로 배포된다.
성북동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3호(2019)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2호(2018)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1호(2018)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0호(2017)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9호(2017)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8호(2016)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7호(2016)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6호(2015)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5호(2015)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4호(2014)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3호(2014)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2호(2014)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호(2013)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4호(2019)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3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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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0호(2017)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9호(2017)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8호(2016)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7호(2016)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6호(2015)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5호(2015)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4호(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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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4호(2019)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城北洞天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단체 주민자치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2013.05.30

주소

  • 주소: 02836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52 (선잠로 12-6)

근거자료 원문

  • ‘성북동천城北洞天’은 성북동 주민, 단체, 예술인들이 결성한 마을 공동체 모임이다. 선잠로 12-6에 조그마한 모임장소를 두고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마을학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2013년 11월 창간호를 낸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는 2015년 11월에 제6호를 발행했다. 잡지는 성북동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골목 기행, 문화재 탐방과 같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북동 주민센터와 성북동의 작은 가게들에서 무료로 배포된다. 얇은 책이지만 성북동 주민들의 나날의 삶을 기록하고 이를 미래에 전달할 유일한 매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상당히 두툼하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183-184쪽
  • ‘성북동천(城北洞天)’은 성북동 주민, 단체, 예술인들이 결성한 마을 공동체 모임이다. 선잠로 12-6에 조그마한 모임장소를 두고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마을학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2013년 11월 창간호를 낸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는 2015년 11월에 제6호를 발행했다. 잡지는 성북동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골목 기행, 문화재 탐방과 같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북동 주민센터와 성북동의 작은 가게들에서 무료로 배포된다. 얇은 책이지만 성북동 주민들의 나날의 삶을 기록하고 이를 미래에 전달할 유일한 매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상당히 두툼하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19
  • [ 53 ] 김철우(성북동천 대표) 1. 인터뷰 개요 피면담자 - 성명: 김철우 - 출생지: 서울특별시 중구 - 주소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직업: 성북동천 대표(화가) 면담자 : 박수진(성북문화원 향토사연구팀장) 면담 일시 : 2016. 6. 22. 면담 장소 : 성북문화원 2. 인터뷰 내용 박수진(이하 박) : 선생님께는 지금 하고 계시는 ‘성북동천’ 활동을 중심으로 많이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김철우(이하 김) : 그런 건 나보다 호진 씨나 김기민 씨가 더 잘 알 텐데. 나는 이름만 대표지. 박 : 아 그래서, 최성수 선생님이 시인이시고 선생님은 화가시고 그렇긴 한데 성북동천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계신가요? 김 : 동네 분들인데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죠. 성북동에 거주하면서 자영업으로 점포를 가지고 계신 분들? 이런 분들이 주예요. 그래서 우리 그 박진하 편집장, 저번 편집장 했던 분은, 이 책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편집하신 분, 디미방 사장님이잖아. 그런 분도 있고. 또 뭐 옷가게, 한복하시는 분도 여기 회원이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박 : 그분들이 어떤 계기로 모이게 되신 거예요? 김 : 예전에 희망제작소에서 한 번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그때 다 모였던 거야. 그때 모였던 건데 그때는 동네 이슈가 뭐였나면은 재개발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죠? 재개발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커다란 이슈였는데 지금은 그 이슈가 깨졌잖아요. 근데 3구역은 아직도 그거 갖고 뭐 어쩌구저쩌구 하더라고. 근데 저도 여기 한신아파트 살다가 이리로 온 거예요, 내려온 거예요. 근데 그게 벌써 세월이 한 15년이지. 박 : 그러면 한신아파트 사신 것까지 합치면 이 쪽에 몇 년 정도 계셨는지요? 김 : 이쪽에서 한 이십 몇 년 살았죠. 아파트가 편하기야 편한데 개인주택에서 살다보면 아파트와 다른 어떤 즐거움이 있잖아요. 그 즐거움을 이제 나는 그림 그리니까 그림 그리는 시간, 학교 강의 나가는 시간 이외에는 거의 노는 사람이니까 그런 걸 즐기는 거죠, 뭐. 그리고 나는 원래 이 도심을 좋아해요. 근데 이제 도심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가지지만, 나는 서울서 태어났고, 또 뭐 어디 강원도 가서 며칠 있으라면은 있지만 거기서 살라 그러면 못 살아. 뭐 네온사인도 좀 반짝거리고, 향수냄새도 좀 나고. 그런 어떤, 난 아주 그냥 도시인이지, 도시인. 박 : 서울 어디 출신이세요? 김 : 충무로에서 태어났지. 박 : 충무로에서? 그러면은 서울에서 계속 거주하신 거예요? 김 : 계속 서울에서 살았고, 우리 친가는 이북에서 넘어오신 분이고, 외가는 서울에서 3대째 있어서 서울 정도 600년 행사할 때 타임캡슐에도 들어가고 그랬어요. 우리 친가도 전쟁 전에 서울로 내려왔대요. 그래서 나는 서울 생활을 이제 내 일상인 양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지. 박 : 사실 저도 아주 어렸을 때 서울에 올라와서 서울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선생님하고 비슷합니다. 잠깐 시골로 가서 뭐 한 달 정도까지는 어떻게 살 것 같아요. 유유자적하면서…. 근데 진짜 평생을 그렇게 살라 하면 못 살 것 같습니다. 김 : 그니까 나는 서울이 좋아. 오늘도 아침에 저기 성북천으로 해서 청계천, 대학로를 지나 집에 들어왔어요. 매일 그렇게 하고 있어요. 우리 집은 나폴레옹(과자점) 뒤쪽이에요.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63-264쪽
  • 김 : 그래서 이제 아까 얘기 계속하면, 예전 희망제작소와 활동하면서 이 동네 살면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 이런 걸 다 했어요. 그런게 보면은 대체로 돈이 들어가야 되는 문제가 바로 나오더라고. 나는 그때 어떤 문제를 제기했었냐면은 홍익고등학교 후문 쪽을 혹시 가보셨는지 몰라. 동구여상하고 홍익고 사이에 있는. 저희 가족이 여기 내려오기 전에는 거기에 살았거든요. 근데 겨울에 보면 거기가 완전 얼음, 빙판길이야. 빙판길인데 뒤에서 걸어오는 아이들이 엄청 많아요. 저기 구민회관 버스종점 1164에서 내려서 그 길로 오는 아이들이 엄청 많아.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저쪽, 미아리나 그쪽에 사는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내려서 이 길로 학교로 가는 거야. 요새 걔네들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을 다니는데 학교를 추억의 길이 아니라, 완전 쓰레기통길과 그냥 낭떠러지 벼랑을 다녀야 되는 거야. 이게 도대체 강남 같으면 말이 되느냔 말이야. 강남 같으면 정말 부모들이 일어나서 난리가 날텐데. 강북은 그런 교육열도 없고 엄마 아빠들이 다 직장 나가고 바쁘니까 우리라도 나서야 되겠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나섰어요. 그래갖고 여기 얘기를 좀 해서라도 계단을 좀 예쁘게 만들고 데크도 좀 만들어주면 좋지 않겠냐 그랬더니 구의원이 그런 얘길 들어주고 그랬었어요. 근데 결국 자세히 들어가보니까 그게 사유지야. 사유지니까 어떻게 구에서도 힘을 못 쓰는 거야. 뭐 구에서는 잘 됐네, 뭐 이럴 수도 있겠지만은… 하여튼 어른으로서 애들한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그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희망제작소에서 와 갖고 마을 만들기 그 조직을 설명하고 그럴 때 우리도 거기 참여를 하게 된 거죠. 저 같은 경우는 그랬어요. 그리고 이제 여기 노인들이 많이 살아. 노인들이 보통 40년, 50년은 보통이야. 나는 거기서 명함도 못 내밀어. 근데 이제 가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맨날 소주 먹는 일로 소일을 하고 계셔.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근데 거기에 뭐가 잘 되어있냐면은 집집마다 결속이 잘 돼있어 갖고, 뭐 누구네 무슨 날이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잔치하고 오고. 또 끝나고 와서 절벽 있는데 거기 주차장 마당에서 술 파티하고 김장할 때는 같이 김장하고 이런 품앗이가 아직도 있더라구요. 어? 이거 봐라 서울시내에? 서울시내에 문 꽝 닫고 들어가면 끝인데. 그래서 이 사는 동네가 살아 있잖아요. 그런 얘기하고. 또 이 밑에 동네는 지금 그 멤버들이 에이프런 그거 만든 멤버들일 거예요. 지금 이렇게 조그마한 공방들이 막 생겼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한번 좀 특화시켜도 재밌을 것 같지 않나, 이런 얘기들도 있었어요. 젊은이들이지만 진취적이더라구요. 그중에서 저 17717 저기 그 갤러리 하는 친구, 우리 그 인쇄 맡아주는, 편집 디자인 해주는 친구 선문, 김선문. 그 친구도 이제 그 갤러리에 와 있고. 그래서 이제 그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은 몇몇이만 모이게 된 거예요. 동네에, 소위 얘기하는 활동가? 활동가도 아니지만은 조직하는 데는 희망제작소에 있던 분들이, 연구위원들이 몇 분 꼈지. 장우현 선생이나 뭐, 몇 명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껴갖고 이제 그런 얘기를 정하고 해서, 야 그럼 우리 이런 성북동 이런 그 자료가 무궁무진한데 이걸 그냥 날려버리는 건 너무 아깝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거라도 하나해서 기록으로 남기면 어떻겠느냐.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어요 이게. 그렇게 해서 만들어져갖고, 그래서 이게 지금 올해 7월 말까지 7호 나오고 하반기에 8호 나오고. 근데 또 동네 분들이니까, 물론 이제 우리가 운영회의도 해요. 운영회의도 하긴 하는데 뭐 운영회의 할 필요 뭐있어요. 뭐 술집 가면 한 두 명 꼬이는데. 동네에서 만나니까. 그래서 만나서 술먹다가 야 누구 좀 와라 해서 같이 또 얘기하고. 박 : 그게 사실 제일 이상적인 것 아닙니까? 김 : 그래서 이제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씩 운영회의를 정기적으로 해요. 행정적으로 맡은 김기민 씨라고 있어. 그분이 이제 모든 행정적인 걸 다 해. 컴퓨터를 잘 다루니까.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64-265쪽
  • 박 : 어, 저도 그쪽 삽니다. 혜화문 밑에. 김 : 거기 요새 난리 났잖아. 뭐 짓고 뭐 편의점 생기고 뭐. 박 : 아 그쪽이세요? 김 : 거기야 거기. 바로 거기야. 빨간 벽돌집. 예전에 여기가 재개발이 되느니 어쩌느니 그게 당시 테마였다고. 근데 이제 희망제작소에서 와서 동네사람들의 어떤 분위기인지 한 번 보고 갔어요. 근데 이상하게 성북동은 오래 산 사람도 많고, 나름 뭐 동네를 아끼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때 성북동에 대해서 분석을 막 했었다고. 그래서 우리도 분석을 했었죠. 그래서 보니까 좋은 점이 뭐냐, 나쁜 점이 뭐냐 이렇게 해서 쭉 썼어. 제일 좋은 점이 뭐냐면 서울 속 시골 같다는 거지.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가 다 되어 있고, 아주 또 너무너무 친하게 그 1988년처럼 그런 분위기가 아직도 살아있는 데가 쌍문동뿐 아니라 여기도, 도심 한가운데도 그런 게 있다 라는 거였어. 또 문제점은 뭐냐 했더니 빈부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이 아랫녘은 그래도 보통 살잖아요. 못사는 편이지, 전반적으로 보면. 그런데 이 위쪽에서 보면 우리가 상상치 못하는 200번지 이상은 거의 그렇잖아요. 이 잘 사는 데하고 못 사는 데하고 사이에 중간적인 역할을 하는 그런 (주택)단지가 있어야 돼. 박 : 전혀 없죠. 김 : 근데 그게 이제 요즘 동사무소에서 하는 성북상인회? 이런 사람들이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야. 또 소담출판사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그쪽하고 다리가 되어서 뭔가 이뤄지기만 하면 상당히 참 힘이, 크게 역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동네야. 여기가 별천지 아니야. 박 : 근데 사실은 서로 교류하기 위한 기회나 이슈가 많지 않은 게 아쉬워요. 김 : 근데 그쪽 사람들이 좀 문을 닫고 있는, 폐쇄적인 것도 있고, 이쪽 사람들은 그쪽을 너무, 어떻게 보면 “에이! 도둑놈들” 이런 생각도 좀 있는 것 같애. 서로 그런 게 있는 거지. 근데 그게 언젠가는 깨져야 되지 않겠어요? 박 : 그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 : 사실 그 중간에 어떤 단체들… 문화원이라든가 그런 단체들이 여럿 있잖아요? 문화재단도 있구. 또 저기 구립미술관? 이런 데서 좀 역할을 해 주면 좋겠어요. 제가 성당을 다녀요. 저도 영세 받은지 얼마 안 됐는데, 거기 가서 보면 그런 걸 확 느껴. 다 힘든 할머니들처럼 보이는 할머니들이 있는가 하면, 항상 딱 외형적으로도 벌써 부(富)가… 어유, 확실히 보여요. 할머니들이야 뭐 돈 천원 내고 헌금으로 그러시겠지. 근데 잘 사는 사람들은 역시 뭐, 누구라 그러면 누구일 정도의 사람들은 다 있어, 성당에. 근데 거기 보면 가끔 이렇게 쾌척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그럼 헌금 뒤에다가 이렇게 쓰잖아요. 무명으로 해갖고. 1억짜리도 넣고 뭐. 가끔 그래. 박 : 저희가 뭐 농담으로 그런 얘기 가끔하는데 성북동 성당이랑 길상사랑 덕수교회이랑 같이 잘 화합하는 게 이 동네가 부자들이 많아서 마음이 여유로로워서 그런다고 해요. 김 : 거기 조직력은 또 덕수교회가 최고야. 종교단체가 사실은 그런 잘 사는 사람들하고 좀 어려운 사람들하고 중간에 교류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64쪽
  • 박 : 지금 성북동천엔 총 몇 분 정도 계신 거예요? 김 : 지금 한 20분 정도? 근데 거기 매번 참여하시는 분들은 한 5~7명? 편집위원들까지하면, 편집위원들은 한 10명 안짝? 20명인데 한 8명은 편집위원들이고. 동에 또 직접 막 하는 분들은 젊은 분들이고 또 전체적인 것들을 핸들링하시는 분은 우리 나잇대고. 그러니까 최성수 선생님이 아마 여기 가장 주도적인, 활자매체하고 또 친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원고 들어오면 그냥 이렇게 그림이나 좀 그려주고 그랬었어요. 내가 할 일 없고 그러니까 대표 시켜놓은 거지. 박 : 그림이 너무 멋진데요, 선생님. 김 : 이거 우리 동네. 이런 거 하고. 이 표지도 이거 내가. 박 : 이것도 선생님이 그리신 거죠? 김 : 그렇지. 이것도 내가. 그리고 이제 거기 ‘오뉴월 스페이스’라는 갤러리 있잖아. 거기에서 한번 그 박영환 씨라고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 분이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해서 그걸 방송을 하고 그걸 갖고서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상 작업을 하거든요. 지금도 아마 서준우 씨하고 많이 작업할걸? 그래갖고 그 분이 뭐 동네 방송국 그걸 만들었었어요. 그 오뉴월 전시장 앞에다가 이렇게 직접 방송하는 거. 방송이래봐야 동네사람들 모아놓고 떠드는 거지 뭐, 김밥 몇 줄 갖다 놓고. 근데 되게 재밌었나봐 동네사람들이. 그래서 처음에 출연을, 아니 처음은 아니고 내가 두번짼가 세번짼가 출연을 했어요, 우리 부부가. 그랬더니 재밌어 죽겠다고 막 그러더라고. 여기도 있더라고. 인터넷에. 박 : 그러면 이제 선생님, 근데 이제 저도 성북동천 이 책 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더라구요. 재밌는 내용도 많고 정말 읽기에 어떻게 보면 소소하다고 해야 되나? 근데 사실은 그 소소한 게 일상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니까, 뭐 대단한 일들이 일상 속에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고, 말 그대로 마을 이야기이기도 하고, 근데 이 책은 참 의미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구요, 또 동천에서 활동하는 게 이거 말고 어떤 게 있을까요? 김 : ‘동네 한바퀴’라는 게 있어요. 그게 어떤 거냐면은 여기 거주하고 계시는 분들, 거주하고 있는 분들의 집을 방문을 하고 거기에서 식사를 하는 거에요. 그게 이제 주로 처음에는 동네 분들하고 연계된 사람들만 해서 이제 데리고 다녔는데, 요즘은 인터넷상에 올려요. 올려갖고 성원이 되면은 그분들을 데리고 성북동을 이렇게 돌아요. 돌아서 요새는 개인 집은 못가. 왜냐면 인원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전에는 개인 집에 가서 그 집의 자랑 같은 것도 좀 내놓고, 주인장 꼬불쳐놓은 술도 먹고 그런 것도 있고, 동네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게 요즘은 조금 이제 모집하는 구성 인원이 좀 다양하다 보니까 그렇게까진 못해. 박 : 그게 참 좋은것 같은데. 김 : 집밥 모임같이… 그런 것 처음에 좀 했었구요. 이런 거는 성공사례이지요. 그러고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할까 하다가 마을 아카데미를 몇 과목 개설을 했었어요. 동사무소에 빈 강의실을 이용해갖고. 그래서 그 내용 나온 것 중에 ‘이물’만들기. 이물이라는 거는 ‘서로 다른 물체’ 뭐 이런 거겠죠. 이물이 어떤 데 쓰는 거냐면 이게 의도가 참 좋았는데 뭔가 좀 서포트가 안되는 바람에… 도자기나 이런 거를 만들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보상을 만드는 거에요. 동네가 여기가 성북1동, 저기가 2동이고 하면 1동 사람들은 같은 주제로 예를 들어서 동물을 쭉 만드는거야. 크기를 좀 어느 정도 있게 해서 비 맞아도 괜찮게 해서 뭐 자기 집 대문 위라던가 지붕 위라던가 그런데 해서하나씩 올려놓는 거야. 그러며는 딴 동네에서 볼 수 없는 것을 해보자는 거였어요. 뭐 외국에는많이 있어요. 일본에도 많이 있고. 또 하나는 애들 글 쓰는 수업도 했었고, 미술 수업도 했었고. 근데 이게 여러 군데에서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분산이 되고 결국 이제 걸러지더라고. 그래서 이물 같은 거는 좀 더 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좀 있어요. 또 하나는 이물 말고 아직 시도는 안 해 봤는데 의논해 본 거는 공작실 운영하는 거. 박: 공작실? 김 : 요즘 생활용품이 너무 쉽게 나왔다가 쉽게 없어지고 그러잖아요. 여기 아파트만 한 번 돌아도 주어올 거 엄청 많아. 근데 그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목공 전문인 사람을 한번 캡틴으로 모셔다가, 뭐 공간이 크지 않아도 돼요. 지하 어떤 이런데 하나 이용해서 기계 몇 개 갖다 놓고, 조형 소품 같은 거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공작소를 한 번 운영을 해볼라고 했는데 그건 신청을 못했어. 그리고 또 요새 야생화 탐방…. 박 : 아, 그거는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김 : 보셨죠? 그거 하고 지금 집밥 모임 두 개는 살아있어. 박 : 제가 사실은 보니까 야생화 탐방이라는 주제는 되게 좋았던 주제인 거 같고, 예전에 최성수 선생님이 저 데리고 골목을 한번 쭉 간 적이 있는데, 그 골목도 되게 좋았거든요. 사람이 너무 많지만 않다면, 성북동 골목 골목에서 한옥도 남아있고 옛날 모습 남아있는 곳을 가보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65-266쪽
  • 박 : 그밖에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는데 성북동천 일이 그렇게 힘들거나 하지 않나요? 김 : 우리는 안 힘들다고 하지. 그런데 이거 맡고 있는 기민씨는 죽을라 그러지. 기민씨는 이것만 하는게 아니니까. 박 : 혹시 뭐 구청이나 서울시나 관에서 지원을 받는 부분도 있나요? 김 : 그런 거 있죠. 우리가 구에서 한 번 받은 거 있고 나머지는 서울미디어센터에서 다 받았죠. 미디어센터에서 지원 받은 건 액수는 그렇게 크진 않고 한 500만원에서 700만원 박 : 그럼 운영에 대해서 지원 받은 건 없고 이런 책 발간 비용 정도만요? 김 : 우리가 회비 내요. 자비가 한 달에 6000원씩 해서 사무실 지금 여럿이 쓰고 있거든요? ‘탐’이라는 건축회사하고 젊은 분들하고 쓰고 있는데 거기 월세 내는데 우리가 일부 좀 내고. 상근이 없으니까 딴거는 없는데. 저번에 우리 MT 갔을 때 좀 쓰고. 또 갑자기 번개 모이면 집에서 하나씩 들고 와서 그냥 뭐. 박 : 20몇 년 사시면서 딴 데 비하면 덜 변했다고 하지만 성북동이… 그래도 많이 변했잖아요? 그런데 뭐 이런건 좀 아쉽다거나 변하더라도 이런 건 안 변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 있으신가요? 김 : 재개발이 안 되면서의 문제점이란 것이 뭐였나면… 위쪽에 올라가면 아직도 푸세식 화장실들이 있어. 근데 그런 것들은 사실 재개발이 안 됐다고해서 나몰라라 놔둘 게 아니라 구에서 좀 지원을 해서 환경개선 사업 같은 걸 좀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어. 아직도 그런 집들이 많아. 이 사이사이에 몇 집들 있어. 그런 것도 있고 여기서 이렇게 막 변하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막 눈 뜨고 나면 한옥이 없어지고 교회도 없어지고 막 난리 났잖아요. 그거를 성북동이라는 어떤 컨트롤 할 수 있는 다만 형식이라도 이게 페인트 색깔을 뭐 일정하게 분위기에 맞춰서 칠한다던지 뭐 건축가 모임이라던지 이런데서…. 이번에 우리 회원으로 들어오신 분 중에 하나는 한옥을 두 채를 개조하셔갖고 건축사 사무실로 쓰시는 분인데 그 분이 이번에 회원으로 들어오셨어. 그분도 들어오게 된 동기가 일단 지리적으로 교통이 좋으니까 일 보기가 좋다는 거지. 그리고 다른 지역에 비해서 건물값이 비싸지 않다는 거, 아직은. 이제 자기네도 북촌에서 사무실을 갖고 있다가 이리로 왔다고 하더라고. 아직은 그런 데에서는 여기가 좋아서 왔는데 이런 건축을 할 때에도 최소한 외형적으로 좀 색깔이라도 좀 맞췄으면 좋겠어.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66-267쪽
  • 박 : 그리고 저도 좀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요. 선생님 이제 성북동천 활동하시고 또 사시면서 가장 좋은 부분이나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데 여기는 꼭 추천하고 싶다 뭐 이런데… 뭐 가게도 좋고 풍경도 좋고 유적지도 좋고 이런 게 혹시 있으신지…. 김 : 풍경은 이 동네가 제일 좋아. 168번지. 거기서 내려다보면 시내야. 그리고 그 위도 공원구역이래요. 근데 그거는 아직 조성을 안 하더라고. 그래서 만약 공원으로 한다고 유도를 할 수 있으면 오히려 팔각정보다 더 좋은 뷰가 나올껄요? 가깝잖아. 박: 저도 한번 가 봐야 되겠어요. 김 : 그게 동구여상하고 저쪽 홍익고등학교 사이야. 근데 거기 지금 데크도 깔아 놓고 운동기구도 놓고 뭘 좀 해놨어. 또 우리가 그때 처음에 마을 운동하고 교육받고 그럴 때 이 동네를 재개발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뭐를 하나 만들면 안 되겠냐, 뭐를 하면 좋겠냐 홍콩처럼 미드레일을 만들자. 그러며는 여기 사람들도 편할 거고 거기 뭔가 형성이 되지 않겠냐 했어요. 박 : 유일하게 있으니까. 김 :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뭐 경사가 이렇게 졌으니까 이렇게 다 하는 게 아니라 몇 군데까지해서 팔각정까지 가는 길을 하나 만들면 어떻겠느냐. 돈은 물론 들겠지만. 박 : 좋을 것 같은데요. 김 : 그니까 그런 기발한 게 있어야지, 뭐 맨날 도로 넓혀주세요. 주차장 만들어주세요 이런것 보다는 그런 게 더 낫지 않을까? 박 : 지금 구에서는 ‘성북동 문학관’? 그런 것도 계획이 있나봐요. 근데 여기는 이제 너무 유명한 분들이 많으니까 한 명만 갖고는 할 수 없어서 예를 들어서 뭐 어떤 지역은 뭐 신동엽 갖고만 하고 어떤 지역은 누구만 갖고 할 수 있는데 여기는 그렇게 치면 인물이 너무 많잖아요. 성북동이 또 요새 고민이 뭐냐며는 구는 관광객들을 유치하려고 하고 반대로 사시는 분들은 그러면 불편하잖아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김 : 방법이 뭐 있겠어요? 서로 상생하는 거라고 나는 봐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불편한대로 또 지주들은 땅값이 올라가니까 속으로 흐뭇해 할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젠트리피케이션이니 뭐니해서 난리잖아요. 박 : 임대료 올라가고 또 그러니까요.. 김 : 그걸 어떻게 중간 점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외국 사례들도 여러 개 있을 것 같은데… 일본이나 독일 같은 데 그런 사례들이 있지 않을까요?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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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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