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우
1923.01.19 - 1999.02.23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성북동에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 교실에서 안병구, 권의, 이종호 등 동료 학생들에게 일본패전을 기회로 조선독립을 목표로 매진하자고 협의하였다. 또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폐간을 성토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항일운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2년 3개월간 복역했다. 2018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당시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이완기와 함께 거주하였다.
성북동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손용우
  • 손용우 집터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孫龍祐
  • 이명칭: 天日正雄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02880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33-60 (성북로 53-2)
  • 비고: 성북 133번지-60호

근거자료 원문

  • ·1940년 9월 초순 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갑조) 교실에서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동료 학생들에게 일본패전을 기회로 조선독립을 목표로 매진하자고 협의 ·성북정 133번지-60호 (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2쪽
  • 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민족주의 계열 이름 : 손용우 주소(당시) : 성북 133번지-60호 주소(현재) : 서울 성북구 성북동 133-60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7쪽
  •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학생으로 1940년 9월 安秉九, 權懿, 李鍾浩 등과 일본패전을 기회로 조선독립을 목표로 매진하자고 협의하였다.
  • 본적: 경기도 양평군 설악면 방설리 주소: 성북동 133-60 계열과 단체: 학생운동 조선문화학원 <활동 내용>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생(갑조) 손용우는 현주소지에서 중동학원 4년생 이완기로부터 “독일이 구주를 통일한 후에는 동양에 손을 미쳐 일본을 공격할 것인데 그 때는 일본은 패전하게 되고 대륙의 제 권익을 방기하고 조선이 독립이 될 순서이다. 우리는 당연히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매진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공명하였다. 1940년 9월 초순 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갑조) 교실에서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安秉九, 權懿, 李鍾浩 등과 함께 전기 이완기로부터 들은 내용과 같이 일본패전을 기회로 조선독립을 목표로 매진하자고 협의하였다. 그리고 일본사는 허위로 학습의 가치가 없다고 공격하고 혹은 몇 년 전 올림픽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이 패용한 일장기 마크를 삭제한 민족적 기사를 게재한 것을 기인으로 동아일보를 정간하고, 지난번,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를 폐간한 것은 요컨대 민족투쟁에 있어 비참한 현상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민족사상을 주입하고 선전하였다. <특이사항> 창씨명은 天日正雄 <참고문헌> 「이완기(석촌완기)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42.5.31. 「치안유지법위반, 보안법위반 및 조언비어사건 검거에 관한 건」1940.10.31. 『사상에 관한 정보(12)』
  • 조선문화학원 중등과(中等科)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초순 이래 서울 성북정(城北町)에서 같은 하숙집에 거주하던 중동학교(中東學校) 4학년생 이완기(李完基)로부터 중동학교 내의 일본어 배척,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배격, 군대교육의 불찬성 등 반일적인 행동을 듣고, 문화학원 내에서도 동료 학우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동지를 규합하기로 하였다. 또 졸업 후에는 농촌청년을 지도해야 하며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결행해야 한다는 등에 대해서도 협의하였다. 이후 같은 해 9월 초순 이래 문화학원을 ‘민족화’시키고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일제패망과 조선독립에 대해, 그리고 일본의 패전(敗戰)을 기회로 조선독립에 매진해야 함을 역설하고, 함께 민족적인 서적들을 학습하였다. 또 일본역사의 허구성 등을 언급하며 배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올림픽 우승자 손기정(孫基禎)의 일장기(日章旗)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東亞日報)』나 『조선일보(朝鮮日報)』가 폐간되는 등을 예로 들며 동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문화학원 내에서 이와 같이 활동한 결과, 동급생 이종호(李鍾浩)·전태현(全泰賢)·박내수(朴來洙)·조재홍(趙在弘)·은인관(殷仁寬)·박형락(朴炯洛) 등과 함께 독서모임을 갖고 여러 차례 회합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또한 이들은 일반 한국인에게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같은 해 9월 28일 오후 5시경, 사직공원(社稷公園)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경성부(京城府)의 국세조사(國勢調査) 게시판에 ‘대한독립만세’ 등의 낙서를 하였다. 이는 이른바 일제의 시정기념일(施政記念日)인 10월 1일을 기하여 조선독립을 선전하기 위해 실천한 것으로서, 당시 일본 경찰을 긴장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이른바 ‘불온낙서 사건’이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에 발각되면서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까지 합세하여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같은 해 12월 9일 문화학원을 비롯해 중동학교 및 배재중학(培材中學) 학생 9명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다.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육군형법(陸軍刑法) 위반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 200일 산입)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3년 2월 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42. 5. 31. 이완기) 사상(思想)에 관한 정보(情報)(12) 독립유공자공훈록(이완기) 1930~40년대 성북지역의 학생운동(변은진,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3호, 2017) 208면 일제말 항일비밀결사운동 연구(변은진 2018) 80면
    독립유공자 공훈록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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