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1927.02 - 1931.05.16
인물 단체 독립운동
1920년대 후반 좌익과 우익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6년 순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의 자극받아 국내에 있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공산주의자 간의 타협에 의해 민족유일당운동으로 조직되었다. 성북구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중 신간회에 참여했던 인물이 여러 명이 있다. 조헌영은 신간회의 도쿄지회장을 지냈고, 한용운은 신간회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을 겸하였다. 최익한은 신간회 창립총회 당시 규칙심사위원이자 간사로 선출된 바 있고, 안재홍 역시 신간회의 총무간사로 활동했다. 이밖에 이기석, 홍기문, 문준석, 유진희 등이 신간회에서 활동했던 성북인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신간회는 1931년에 이르러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인해 해산되었다.
성북구
  • 신간회 본부 터 표석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新幹會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단체 독립운동

시기

근거자료 원문

  • ○ 민족유일당 신간회와 성북인들 민족의 단결과 정치경제적 각성, 기회주의자 배격 등의 기본 강령으로 내세운 항일단체 신간회는 점차 규모를 확대해 전국 곳곳에 지부를 두고 만주와 도쿄에도 지부를 설립합니다. 이때 신간회 도쿄지회장을 지낸 이가 조헌영입니다. 한의학자이자 민족운동가로 활동한 그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로 해방 이후에는 반민특위조사위원으로 활동했고 6·25전쟁 중 납북되었지요. 그의 아들이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인 조지훈입니다. 신간회의 활약은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두드러집니다. 당시 신간회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열어 일본의 조선인 학생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에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또한 전국 순회 강연회를 열어 민족의식을 높이고 일제 식민 통치의 잔학성을 규탄하기도 합니다. 조직의 영향력이 컸던만큼 신간회에서 활동한 성북인들도 여럿입니다. 한용운은 신간회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을 겸하며 든든한 지주 역할을 합니다. 앞서 대동단 조직을 주도했던 인물로 소개한 최익환 또한 출옥 후 신간회에서 활동하지요. 그는 창립총회 당시 규칙심사위원이자 간사로 뽑힌 바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청년외교단으로 활동했던 안재홍 역시 신간회의 총무간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조선일보 부사장직을 겸하면서 조선민중대회를 열고 일본의 민족 차별적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밖에 신간회 복대표대회에서 상무집행위원, 신간회 영덕지회 간사로 활동한 이기석과 소설『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의 장남으로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와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홍기문,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경성고보 교사를 겸하며 신간회 경성지회 소속으로 활동했던 문석준, 신간회 활동으로 식민지 정책의 타도와 총독정치를 배격하다 징역살이를 하게 된 유진희 등이 신간회에서 활동했던 성북인들이자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신간회는 좌우가 협력한 민족유일당 운동의 결과로 의미가 있었지만 1931년에 이르러 다시금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간의 갈등이 일고 결국 해소를 선언합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66-67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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