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상
1935 - 2017
인물 개인 화가
인물 개인 교육가
전통 수묵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해 온 화가이다. 해, 달, 별, 구름과 같이 우주와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담은 「조(潮)」, 「문살」, 「율(律)」 등은 비구상적 추상화를 표상해 온 그의 작품들이다. 스승 서세옥과 서울대 동료들과 함께 1970년대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는데, 마당에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기념으로 목련과 후박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후학들을 양성하였고, 퇴임 이후에는 성북동 자택의 화실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성북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근거자료 원문

  • 충남 당진, 노석 신영상의 고향마을은 예부터 검은 돌이 많아 '흑석(黑石)'이라고 불렸다. 오래된 돌이란 뜻의 호 '노석(老石)'은 수많은 시간을 견뎌온 흑석마을의 검은 돌이자, 흑석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제는 오랜 세월의 경험을 터득한 신영상 자신이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돌처럼 노석은 인간중심의 흔들림 없는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서양화가였던 아버지는 8.15 해방 이후 서산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미술에 대한 인식이 낮던 시절이었지만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그림과 친해질 수 있었다. 학창시절 그림을 곧잘 그린 노석은 그림에 관심이 있던 아버지 친구 분에게 석고 데생을 지도 받으며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1961년 <소게(小憩)>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입선하였다. 언제나 아들을 묵묵히 지켜봤던 아버지는 국전 등단 소식에 기뻐하시며 소질을 물려받은 아들을 뿌듯해하셨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노석은 1970년대 초 성북동에 자리를 잡는다. 이전에 살던 복잡한 시내와는 달리 산과 나무, 개울이 있는 성북동에 이끌렸다. 녹음이 우거진 산자락에는 근원 김용주이 살던 노시산방, 상허 이태준의 집인 수연산방과 같이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더욱이 훌륭한 문화재와 옛 서화가 보존되어 있는 간송미술관이 가까이에 있어 특별전이 열릴 때면 작품을 감상하며 안목을 높일 수 있었다. 미술대학 동문들이 1970~80년대에 근처로 모이면서 서로 교류하며 지낼 수 있는 것 또한 성북동에 사는 즐거움이 되었다.
  • 35년 동안 서울대 미대 교수로 제자를 길러내며 노석은 제자들에게 논어의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정신을 가르쳤다. '바탕을 먼저 손질 한 후에 색을 칠해야 한다'는 이 말은 본질이 있은 후에 꾸밈이 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은 바른 인격이 우선이고, 작품은 화가의 본질을 반영한다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또한 구태의연한 작품과 정신으로는 제자들을 가르칠 수 없음을 알고 항상 노력하였다.
  • 노석은 자연의 끊임 없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처럼, 안과 밖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문처럼, 그림 속에서 살아왔다. 정년퇴임 후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어쩌면 노석의 세계를 화폭 위에 구현하는 또 다른 시작점일 것이다.
  • 연보 1935년 충남 당진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경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운영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한국화회 회장·고문, 문교부 교육과정심사위원,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명예교수 수상 제2회 신인예술상 문공부(1963), 제13회 국전 문교부 장관상 문교부(1964), 황조근정훈장(2001) 등 전시 뉴델리 트리엔날레 국제전(1971), 도쿄 아시아 현대미술전(1974), 뉴욕 알파인갤러리 신영상전(1988), 동경 베세토 국제회화전(일본, 1998), 신영상 작품전(2000) 등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한국), 덴버미술관(미국) 등
  • 충남 당진 출생. 전통수묵을 현대화 하는 작업을 해 온 화가이다.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박세원, 장우성, 서세옥을 사사하고 묵림회에 참여했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해·달·별·구름과 같이 우주와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담은 <조潮>, <문살>, <율律>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1970년대 성북동에 집을 마련하고 2층에 화실을 두었다. 마당에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기념으로 목련과 후박나무를 심었다. 35년 동안 서울대 미대 교수로 제자를 길러냈고, 학교를 떠난 이후에는 성북동에서 말년을 보내며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53쪽
  • 노석(老石) 신영상은 스승 서세옥, 박세원 등과 함께 묵림회를 통해 1960년대 중반부터 동양화의 현대화 작업에 매진해 왔다. 1960년대에는 인물, 소, 말, 조류 등을 소재로 전통적 동양화의 길을 걷는 듯 했으나 이미 이시기에도 수묵담채의 과감한 생략적 필치와 발묵기법이 시도되고 있었다. 이러한 표현기법들은 묵림회의 방향성과 일맥 상통하여 더욱 심화되면서 70년대 들어 점점 비구상적 추상화를 표방하게 된다. 해, 달, 별, 구름과 같이 우주와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담은 <조(潮)>, <문살>, <율(律)> 시리즈가 70년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직선을 근간으로 한 기하학적이면서도 미니멀한 그의 작품세계는 수평, 수직, 대각선 방향으로 그어진 수묵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수묵이 주는 담백한 맛은 미니멀한 추상의 기하학 세계와 어울려 한국적 선비정신을 불러내는 듯 하다. 창호지 문살이 주는 기하학적이면서도 담백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러한 맛을 풍긴다고 하면 어떨까. 신영상은 문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문의 세계는 삼라만상의 존재를 주관적 심상으로 투영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 닫힌 세계를 위한 표상이 아니라 열린 세계의 상징이며 자연공간과 내적 공간, 개체와 주체와의 만남을 이루게 함으로써 철저한 부정의 그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양자를 공유하려는 동양적 슬기가 숨어 있는 것이다”라며 문살이라는 소재를 통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미술사가인 정형민 교수(서울대)는 신영상의 작품세계에 대해 “문인정신을 구심점으로 설정하고 동시에 파격을 시도한 한국 현대작가의 고뇌와 실험정신의 표상”이라고 평가했다. 스승 서세옥과 서울대 동료들과 함께 1970년대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는데, 마당에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기념으로 목련과 후박나무를 심었다. 모교에서 후학을 길러냈고, 퇴임 이후에는 성북동 자택의 화실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94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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