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림
1932 - 2014
인물 개인 문인
인물 개인 교육가
인물 개인 언론인
음악평론가이자 소설가, 번역가이다. 1957년 20대에 쓴 소설 「지옥도」가 『신태양』에 실리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영문학을 전공하여 1960년대 펄 벅, 노먼 메일러 등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서 발간하였다. 서양고전음악을 듣고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서 『레코드음악』에 음반의 감상과 평가를 연재하기도 하였다.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장자』를 완역하고, 『벽암록』을 번역하였다. 동소문동 자택에서 말년을 보냈다.
삼선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동

근거자료 원문

  • 음악평론가이자 소설가, 번역가이다. 영문학을 전공하여 1960년대 펄 벅, 노먼 메일러 등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서 발간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서양고전음악을 감상하는 취미가 있어 음반을 수집하고, 명동과 종로에 있던 음악감상실에 다니며 음악을 들었다. 음악잡지 《레코드 음악》에 음반을 듣고 난 감상과 평가를 연재하였고, 이를 모아 1988년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을 냈다.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서양 고전음악 입문서로 불릴 만큼 30년 동안 꾸준히 읽힌 책이다.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내 마음의 아리아』 등 음악 관련 책을 꾸준히 집필하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장자』를 완역하고, 『벽암록』을 번역하였다. 동소문동 자택에서 말년을 보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42쪽
  • 1932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난 안동림은 목재상을 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 당시로는 비싸고 귀한 유성기가 집에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회체제가 공산주의로 바뀌며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는 비극이 일어난다. 이웃과 친지가 사상에 따라 갈라지고, 서로 목숨을 빼앗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1951년, 열아홉 살 때 혼자 남한으로 내려온다. 서울에 정착하여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영문학 공부를 하였다. 20대에 쓴 소설 「지옥도」가 《신태양》에 실리며 문단에 등단한다.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 작업은 영문학도이자 문학에도 재능이 있는 그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녀 어린시절 <수호지>, <삼국지>, <삼총사> 같은 외국 작품을 일본어 번역본으로 읽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한글을 배웠고, 영문학을 배우며 원어로 작품을 읽은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다. 노먼 메일러, 「나자와 사자」(1964), 펄 벅, 「살아있는 갈대」(1963), 로빈·무어, 「실기월남전쟁」(1966), 브레이스 웨이트, 「선생님께 사랑을」(1975) 등 번역한 작품을 신문에 연재하거나 책으로 냈다. 이 무렵 시인 신동문이 편집주간으로 있던 신구문화사의 사무실과 근처 다방에는 김수영, 이호철, 최인훈, 고은 등 젊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신구문화사는 처음으로 전국 외판조직을 갖춰 활발하게 번역전집 출간 사업을 추진할 때라 안동림도 출판사를 오가며 이들과 어울렸다.
  • 어린 시절 가장 신기한 물건이었던 유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유행가 소리,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가르쳐 준 노래는 안동림의 음악 인생의 첫 자락이었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은 <켄터키 옛집>, <올드 블랙 죠>, <대니 보이>, <즐거운 나의 집> 같은 서양 가곡과 오페라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가르쳐 주었다. 이때의 기억은 서른이 넘어 다시 찾아왔고, 1960년대부터 음악에 빠져 음악을 종교처럼 여기는 삶이 시작되었다. 명동과 종로에 있던 ‘돌체’‘, 르네상스’같은 음악감상실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희귀한 음반을 소장하고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주 가는 곳이었다. 음악애호가들과 직업이나 나이를 뛰어넘어 감상실에서 안면을 트고, 친분을 쌓았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1960년대 중반, 아내 몰래 돈을 아껴모아 LP 판을 사 모았다. 음악을 들으려 큰 돈을 들여 산 소니 트랜지스터를 소매치기 당하기도 했지만 음악 듣기를 멈추지 않았다. 당시 세운상가에 모여 있던 음반가게에는 미8군에서 나온 클래식 LP 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보통 음반 한 장이 1,500원일 때 미8군에서 나온 8천원이 넘는 음반을 사니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번역료와 원고료는 고스란히 LP 판으로 바뀌어 집에 쌓였다. 무척 간난하고 외로웠던 그 시절(1960~70년대)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온 가락이 있었다. ‘뜰 앞의 추초秋草도, 벌레 소리도, 인제는 다 지어서 쓸쓸하고나. 아 백국화야, 아 백국화야, 너 홀로 남아서 정답게 피었고나’였다. 이 노래가 스코틀랜드의 민요‘더 라스트 로즈 오브 서머(The Last Rose of Summer·한떨기 장미꽃)’라는 사실은 훨씬 뒤에 알았다. 진한 향수와 더불어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는 고독이 그 노래에 묻어 내 둘레를 감쌌다. 이를 계기로 중학교 1학년 때 배운 노래가 꼬리를 물고 되살아났다. 그런 노래들이 내 클래식 음악 입문의 계기가 됐다. - 안동림 - 이때부터 음반사 ‘성음’에서 출판하는 음악잡지 《레코드 음악》에 음반평을 실었다. 스스로 음악 전문가도, 비평가도 아니라고 밝히며, 생활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부터 익숙해지고, 자신이 즐기며 음악을 듣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3~4년 동안 연재한 글을 모아 1988년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을 출간했다. 260여 음반의 해설을 담고 있는 만만치 않은 분량인 이 책이 스테디셀러가 되고, 첫 손에 꼽히는 클래식 입문서가 된 이유는 음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기 때문이다. 번역가답게 원어 발음대로 외국 작곡가와 연주자의 이름, 작품 제목을 표기했다. 우리말 표기법에 따른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과 음악에 입문하는 이들을 위해 책에는 용어 해설이나 색인을 넣어 이해를 도왔다. 베토벤, 브람스, 메시앙, 윤이상과 같은 서양 음악 작곡가와 소프라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명연주자의 명반을 망라하며, 음반을 녹음하는 과정이나 특징까지 소개하였다. 26년 동안 100만 부가 팔렸고, 지금까지도 서양 고전 음악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교과서라고 불리고 있다. 이어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 『불멸의 지휘자』, 『퀴즈로 배우는 클래식』을 펴냈다. 음악잡지 《객석》에 3년 동안 연재한 『불멸의 지휘자』는 일흔 일곱 살에, 『내 마음의 아리아』는 여든 살에 펴냈다. 음악은 나의 종교라고 할 만큼 음악을 즐기고 늘 음악을 가까이 즐기고 한 결과였다. 오로지 자신의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낀 음악에 대해 찾아 공부하고 생각으로 정리해 글을 써 온 그였다. 나는 음악의 전문가가 아니다. 비평가는 더욱 아니다. 그저 애호가일 뿐이다. 한 애호가로서 보고 듣고 읽은 것을 이 저 잡지와 레코드 해설에 써왔다. 이제 여기 한 권의 책으로 추려 모아 본다. 다함께 가슴에서 가슴으로 뜨겁게 전해져 오는 음악에 귀기울여 보자. -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
  • 안동림은 기자, 출판인, 번역가, 교수, 음악평론가로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하였다. 1967년 《동서춘추》창간에 참여해 주간을 맡았고, 신문기자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며 글과 책의 세계에 몸담았다. 또한 대학 전공을 살려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강단에 섰다. 동양고전에도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장자』를 완역하였다. 중국 선禪사상을 담고 있는 『벽암록』을 번역하여 정확함과 깊이 있는 풀이로 전공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주석을 꼼꼼하게 달아 연구자들이 원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번역한 문장을 매끄럽게 공들여 다듬었다. 한 살 차이 친구인 소설가 정인영과는 1958년쯤 예술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동에 있는 ‘갈채다방’에서 만나 노년까지 지기지우知己之友로 지냈다. 2010년 두 사람이 월요일마다 만나길 1년, 고전 번역본에 꼭 필요하지만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장자』 색인을 만들었다. 『장자』 완역 후 37년 만에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작업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나온 것이다. 영문학자이면서 중국 고전을 번역한 한학자이고, 음악비평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하며, 고전번역과 음악평론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를 낸 저술가인 그에게 ‘우리시대의 르네상스인’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1천여 장이 넘는 음반을 모으고 음악 감상을 즐겼지만 호사가처럼 값비싼 앰프나 진공관, 오디오 시설을 탐내지 않았다. 2002년 이사한 동소문동 자택 서재에는 책과 음반이 빼곡하게 꽂혀있고, 손때 묻은 오디오 시설부터 컴퓨터와 mp3 플레이어까지 갖춰 놓고 있었다. 간단한 조작만으로 전 세계에서 나오는 음악을 다 들을 수 있는 편리함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로 내구성이 약한 SP판을 조심조심 다루며 음악을 듣던 때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도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음악을 듣고, 자신에게 맞는 음악과 예술가의 연주를 찾아 즐겼다. 클래식 음악은 기악곡과 성악곡 등 다양하지만 결국은 음악 사랑의 종착역은 오페라 아리아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만한 악기가 없기 때문이죠.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의 오페라 아리아는 그래서 예술의 극치입니다. - 안동림 - 그가 뽑은 명반은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9번,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하는 ‘광란의 아리아’, 또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의 아리아집이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쓴 글을 읽고 클래식에 입문하고, 도움을 받지만, 평가는 각 감상자에 달려, 모두에게 각자의 ‘명반’이 있다고 하였다. ‘어리석기가 더 어렵다’는 중국 문인 장판교의 말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자연주의 사상을 좋아하는 소박함으로 세상을 산 안동림. 중세 종교 음악과 성가를 들으며 명상을 즐기고, 낭만을 즐기며 말년을 보낸 그가 세상을 뜨는 마지막 길에 남긴 말은 ‘번거롭지 않게, 소박하나 따뜻하게’였다. 조용히 저 세상으로 가는 길에 육신이 묻히는 땅에는 안동림의 선비 같은 자취와 정신을 닮은 ‘무거무래無去無來-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졌다.
  • 1932 평양 출생 1961~『제삼국의 흥망』, 『헤밍웨이의 문학적 단상』, 『살아있는 갈대』 등 번역 1967 《동서춘추》주간 1977 『장자』 번역 1979 롤랑 마누엘 『음악의 정신사』번역 1982 청주대학교 부설 미국문화연구소 소장 1988 『이 한 장의 명반』 출간 1999 『벽암록』 번역 2009 『불멸의 지휘자』 출간 2014 별세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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