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1911.11.03 - 1977.04.18
인물 개인 문인
인물 개인 교육가
소설가이다. 1935년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적십자병원장」과 콩트 「붉은 목도리」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대표작인 『북간도』는 한인들의 북간도 개척사를 다룬 5부작 대하소설로 성북동 어느 암자의 방을 빌려 집필했다고 한다. 빽빽하게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글을 쓰고, 마당에 파초와 오동나무를 키우던 종암동 123-71번지 집에서 타계하였다. 작품으로 「제삼인간형」, 『북간도』, 『창을 남으로』 등이 있다.
성북동 종암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 123-71번지

근거자료 원문

  • 소설가 안수길과 그의 제자들 안수길에게는 문인 제자가 유달리 많았다. 1950년대에 서너 해동안 ‘문인의 산실’로 불렸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장으로 재직했던 까닭도 있지만, 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문인 또한 한둘이 아니었다. (중략) 1948년 가족과 함께 월남한 후 <경향신문>조사부장과 여러 대학 강단에 서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북간도>와 <통로> 등 두 편의 대하소설을 비롯해 가장 많은 작품을 발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따금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70년대 중반까지 소설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무렵 한 쪽 폐를 잘라낼 정도로 건강은 최악의 상황이었으나 <경향신문>에 <이화에 월백하고>를, <현대문학>에 <동맥(冬麥)>을 연재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찾아와 건강을 걱정하면 늘 ‘괜찮다’고 제자들을 안심시켰다. 안정을 취해야 할 상황인데도 소설에 파묻혀 지내다가 폐에 다시 문제가 생겨 입원을 하게 됐지만 안수길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 않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날, 안수길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최인훈과 김윤식에게 그는 ‘많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안수길은 그 다음날 4월 18일 숨을 거뒀다. 정규웅, 2010,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이가서, pp.78~81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02
  • 소설가이다. 1935년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적십자병원장」과 콩트 「붉은 목도리」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염상섭, 송지영들과 만선일보에서 기자로 있으며 장편소설 「북향보」를 연재하였다. 만주에서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해방과 전쟁을 겪는 시대상을 소설에 담아냈다. 대표작인 「북간도」는 만주 개척사를 다룬 5부작 대하소설이다. 한국전쟁 때 염상섭, 이무영과 함께 해군 종군작가단에서 복무했고, 박연희, 김수영, 김종삼들과 어울려 지냈다.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서라벌예대에서 교수를 하며 문예지 《북향》을 발행했다. 빽빽하게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글을 쓰고, 마당에 파초와 오동나무를 키우던 종암동 123-71번지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25쪽
  • 안수길(安壽吉) 1911-1977 남석(南石) 소설가.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35년 단편 「적십자병원장」이 『조선문단』에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 『만선일보』가 발족되며 염상섭·신형철·이석훈 등과 같이 일을 했고 서라벌예대,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작품으로「제삼인간형」(1953), 『북간도』(1959~67), 『창을 남으로』(1967~68) 등이 있다.
  • 안수길(1911~1977): 함남 함흥 출생. 서라벌예대 교수를 지냈으며 종암동 123-71번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앞의 책, 25쪽) 대표작 『북간도』를 성북동 어느 암자의 방을 빌려 집필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75쪽
  • ○ 안수길(安壽吉) 작가의 삶 · 함남 함흥 출생(1911∼1977), “『북간도』의 작가” · 주소지가 안암동, 종암동 등으로 되어 있어 기존에 ‘성북동 문인’으로 분류되지 않았음 · 회고를 통해 자신의 대표작 『북간도』가 성북동에 위치한 암자에서 집필되었음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힘. (※ 주소지를 기준으로 한 문인 조사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예)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75쪽
  • · 【신문기사】 「「북간도」의 안수길 씨」, 『동아일보』 1967. 10. 31. “그리하여 지난봄부터 반년을 성북동 한사에서 씨름, 나머지 4, 5부를 완성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75쪽
  • ·안수길, 「 『통로』 연재 무렵」, 『안수길 전집』16권. 그래서 어디 교외로 나가기로 했는데 얼핏 생각한 것이 작년 여름에 『북간도』 4, 5부를 쓴 일이 있는 성북동 골짜기의 약사암으로 가서 그 근처를 배경으로 몇 컷 찍기로 했다. 그때에는 아직 현대문학사에 자가용이 없었으므로 택시였던가 사장차였던가 어떻든, 사에서 골목에 대령시켜 놓은 차로 성북동 골짜기로 달렸다. 그러나 1년 사이에 언덕 위의 약사암은 헐려 자취도 남지 않았고 입구였던 곳의 바위에 ‘약사암 입구’라고 쓰여 있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가 기거하고 있던 3, 4개월간에도 해결되지 못했던 대지(垈地) 소유권 문제에 암자측이 불리해 헐어 가지고 광나루엔가에 옮겨갔다는 간단한 소식을 근처의 구멍가게에서 들려주었다. 암자 앞에서 찍으려던 것이 그만 허탕이 되고 말아, 입구 바위에 걸터앉아 한 컷, 포즈를 취했다. 그 외에도 근처의 팔정사, 청룡암 등에서 여러 장 찍었으나 예고에 쓴 것은 약사암 입구 바위에 걸터앉은 장면이었다. 예고 때의 『통로』는 가제였다. 물론 내가 작명했다. 그러나 어쩐지 미흡한 생각이 들어 김 편집장과의 전화에서 그것을 우선 가제라고 표시해 주도록 부탁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1쪽
  • ○ 안수길과 남정현, 최인훈 교류 「북간도의 안수길 씨」, 『동아일보』 1967. 10. 3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4쪽
  • ○ 안수길과 남정현, 최인훈 교류 「작가 안수길 씨 별세」, 『동아일보』 1977. 4. 18.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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