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위기 해결
“아니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만들기 사업이라고 해놓고 주민들과 상의 없이 그렇게 마음대로 모든 걸 바꾸면 어떻게 합니까!”
전화를 관통하는 활동가의 언성이 높다.
“죄송합니다. 활동가님. 저희들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라. 뭐라 드릴 말씀은 없고 활동가님이나 주민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해요.”
활동가가 앉아있는 뒤편에 모여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삼태기마을 주민협의체 임원진들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이렇게 임원진들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성북구 월곡 2동에 위치한 삼태기마을이 서울시 건강친화마을만들기 사업지로 선정된 것은 지난 2012년 5월. 3년간의 지원으로 삼태기마을은 건강친화마을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주무부서는 성북보건소 건강정책과였는데 처음에는 의욕적인 자세로 삼태기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삼태기마을의 사업 진행속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더디게 흘러갔다. 예산편성에 따른 누적, 건강마을 만들기 지원단과 성북보건소와의 불화 등등으로 인하여 삼태기마을과 동시에 건강친화마을 시범지로 선정된 강북구 오얏마을에 비교하면 진행 사항이나 주민들의 참여도가 가히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실사랑방이 완공되고 상근활동가가 들어오면서 삼태기마을의 사업진행 속도와 주민들의 참여도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늘어나고 사업의 체계가 잡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급기야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라고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삼태기마을을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단체들의 방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 나가는 듯싶었는데 2012년 12월 무렵부터 삼태기마을 주변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담당주무부서가 바뀌고 예산도 엄청나게 삭감된다는 소문. 처음엔 삼태기 마을 주민들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취지대로라면 담당공무원들이 주민들과 상의하고 진행할 것이라고 주민들은 믿었기 때문에 그런 소문들은 삼태기마을의 발전을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낸 헛소문이라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설마 마을만들기 사업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가 사업의 취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겠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주무부서가 복지정책과로 바뀌고 지역복지관에 사업을 위탁시킨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더불어 삼태기마을에서 예산을 부정하게 써서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문도 떠돌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이 주인이라는 핵심취지에서 벗어난 상황도 황당했지만 예산을 부정하게 썼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니. 당장 서울시 담당부서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 보았다. 담당공무원은 주무부서 변경과 복지관 위탁, 예산 삭감이 모두 사실이라고 확인해주며, 다만 예산 삭감은 악소문과는 무관하게 서울시 의회에서 예산의 형평성을 위해 결정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삼태기마을 주민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사실을 담당부서가 먼저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소문으로 먼저 듣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담당공무원들은 모든 것이 확정된 다음에 주민들에게 알려주려 했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주민들은 논의에 참여하는 대상이 아닌 관리하는 대상임을 확인시켜주는 꼴밖에 안 되지 않는가. 이래놓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만들기 사업이라니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화가 난 주민들을 대표하여 삼태기마을 주민협의체 임원진이 서울시를 항의 방문하였다. 전임부서, 후임부서 담당공무원들이 모두 나와 방문한 임원진에게 사죄를 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따라가고 싶지만 힘이 부족하여 주무부서 변경, 복지관 위탁, 예산 삭감 모두 변경하지 못하고 결정된 대로 가야되니 이해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망한 임원진은 다시 한 번 대책회의를 열어 최후의 수단을 강구해보자고 했다.
다음날 열린 대책회의에서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갔다. 이런 식으로 주민들을 무시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지 말고 종료시키자는 의견, 기자 회견을 통해 서울시 마을만들기 사업의 모순을 까발리자는 의견, 서울시장과 직접 면담을 하여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자는 의견 등등 강도 높은 대응을 하자는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우선, 예산이 2억 4천에서 5천만 원으로 무지막지하게 삭감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불만이 있었고 그로 인해 인건비 지급 부분이 줄어들어 건강마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상주해야 하는 간호사를 해고해야 하며 줄어든 사업비의 인건비 지출비율에 따라 활동가도 1명만 고용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주민들의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강력하게 대응하자는 의견만 나온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 원만하게 사업을 이끌어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오랫동안 논의가 이어졌지만 결론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다음 번 대책회의에서도 강도 높은 대응을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의 기세는 줄어들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자는 의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변경한 서울시는 괘씸하지만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탄력을 받기 시작한 삼태기마을 사업을 이렇게 접기는 너무나 아깝고 허무하다는 것. 대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변경되기 전에 담당부서는 충분히 주민협의체와 먼저 상의를 할 것과 복지관에게 사업의 위탁권이 가더라도 사업의 운영권과 결정권은 온전히 주민협의체의 몫으로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갈 것을 확답 받아 놓고 가자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또, 마을활동가 부분도 1명이 모든 사업을 처리하기가 어려우므로 1명분의 인건비를 나누어 상근활동가와 반상근활동가를 고용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입장을 정리한 삼태기마을 주민협의체는 3개월 만에 새로 바뀐 담당부서와 새로 사업을 위탁 받게 될 복지관과 업무 협약을 맺었다. 다소 힘든 부분은 예상되지만 삼태기마을은 새로운 마음으로 재도약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맞서 싸우는 것 혹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어떤 선택이 마을을 위한 올바른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태기마을 주민들이 보여준 방식. 일방적인 거부 또는 수용이 아닌 주민들끼리 대화를 하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는 방식은 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인데 삼태기마을은 위기의 순간에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삼태기마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민들끼리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활동가의 덧붙임
마을만들기 사업의 주체는 주민이다. 아직 마을만들기 사업초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행정편의주의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주민들에게 접근하려는 일부의 공무원들이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주민역량강화라는 미명 하에 주민들에게 수많은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예산 결정권을 가지고 주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무원들 먼저 마을만들기의 개념이 무엇인지 제대로 교육을 받고 체화시켜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