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웅
1901 - 1998
인물 개인 서예가
서예가이다.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의 편액을 썼다. 한국 근대기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초서(草書)에 독보적인 경지를 이뤘다는 평을 들었다. 1972년 부인과 사별한 이래 서울성곽과 맞닿은 성북동 집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써준 재호(齋號) 일쾌헌(一快軒)이 걸려 있었다. 그의 집은 성북동에서 가장 편지가 많이 오던 집으로, 성재 김태석, 위창 오세창, 위당 정인보, 백범 김구, 운석 장면, 혜곡 최순우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명필가 우우임(于右任), 화가 제백석(齊白石) 등 많은 명가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兪致雄
  • 이명칭: 일창(一滄)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서예가

시기

주소

  • 주소: 02879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10-46 (성북로23가길 13)

근거자료 원문

  • 일창 유치웅은 1901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우당 유창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대 독립운동가이자 명필가 중 한 명이었던 아버지 우당의 정신과 재능은 일창에게 이어졌다. 글을 쓸 때마다 일창에게 먹을 갈고, 화선지를 잡게 한 아버지 곁에서 13년간 묵묵히 먹을 갈며 서법을 터득하고 안목을 키웠다.
  • 1972년 부인과 사별한 이래 일창은 성북동에서 여생을 보냈다. 1998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한 집은 서울성곽과 맞닿아 있다. 넓고 좋은 집은 아니었으나 청렴한 공직 생활 20년 동안 돈을 모아 마련한 집이었다. 마당 한 편의 작은 정원에는 직접 장미와 국화꽃을 심고 가꾸었다.
  • 일창의 집은 성북동에서 가장 편지가 많이 오던 집이다. 그만큼 사회 여러 분야의 명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성재 김태석, 위창 오세창, 위당 정인보, 백범 김구, 운석 장면, 혜곡 최순우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명필가 우우임(于右任), 화가 제백석(齊白石) 등 많은 명가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 연보 1901년 충남 부여 출생 경성공학전문학교 토목과 졸업 경력 보인중학교 교원, 동성중학교 교사, 감찰위원회 비서실장(이사관)·감찰관, 사정위원회 위원(1급), 성균관 부관장, 학교법인 명지학원(명지대학교) 이사장, 국전 서예부 초대작가·심사위원 수상 노후생활 찬하 월남장(1986), 우관상(又觀賞) 수상(1996) 전시(유작전) 예술의 전당(2000),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2008)
  • 충남 부여 출생. ‘심우장’ 편액을 쓴 서예가이다. 1945년부터 동성중학교 교사와 보인상업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고, 1948년에는 위당 정인보의 권유로 초대 감찰위원회 감찰관을 지냈다. 이듬해에는 ‘부운장학회’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의 뜻을 이어갔다. 1972년 부인과 사별한 이래 성북동에서 여생을 보냈다. 마당 한 편에는 작은 정원을 꾸며 장미와 국화를 가꾸었고, 사랑방에는 정인보가 선물한 매화를 키웠다. 위창 오세창이 써준 재호齋號 「일쾌헌一快軒」이 걸려있었다. 오세창이 만해 한용운의 집 ‘심우장’ 글씨를 써 준 편액이 없어지자, 유치웅이 오세창과 인연, 한용운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글씨를 썼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68쪽
  •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의 편액을 쓴 서예가이다. 한국 근대기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초서(草書)에 독보적인 경지를 이뤘다는 평을 듣는다. 1901년 충남 부여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명필로 손꼽혔던 우당 유창환의 차남으로 태어나 부친의 정신과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1945년부터 동성중 교사와 보인상업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고, 1948년에는 위당 정인보의 권유로 초대 감찰위원회 감찰관을 지냈다. 감찰관직을 맡았을 때 부정부패에 엄격했고, 공직에 몸담는 동안에는 관의 물품하나도 빌려쓰지 않았다. 20년동안 두차례 명지대 이사장을 지내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고, 이듬해에는 부친이 부흥학교를 설립한 뜻일 이어받아 ‘부운장학회’를 설립했다.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해서 단 한번도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 일창은 생전에 “초서는 동글동글, 한 군데도 모가 나선 안 되오”라며 심우장의 편액에서 보듯이 모나지 않으면서도 기품있는 초서의 서체를 갈고 닦았다. 위창 오세창, 위당 정인보, 성재 김태석 등 일창과 교유한 서예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1972년 부인과 사별한 이래 서울성곽과 맞닿은 성북동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마당 한편에는 작은 정원을 꾸며 장미와 국화를 가꾸었고, 사랑방에는 위당 정인보 선생이 선물한 매화를 키웠다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써준 재호(齋號) 일쾌헌(一快軒)이 걸려 있었다. 일창선생이 해방이 되어 위창 선생을 찾으니 바깥분위기를 물어 “일쾌이(一快已) 올씨다(일본세력이 한순간에 빠져나갔다)”고 하니 이 대답에 흡족해하며 써준 것이었다. 오세창이 만해 한용운의 집 ‘심우장’ 글씨를 써준 편액이 없어지자, 유치웅이 오세창과의 인연, 한용운을 기리는 마음을 함께 담아 글씨를 썼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18쪽
  • 6. 성북동 문화예술인 주소지 이름: 유치웅 주소(현재): 성북동 210-46 분야: 서예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9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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