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
1877.03.30 - 1955.08.16
인물 개인 기타
조선 말기 왕족이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1891년 의화군에 봉하여졌으며, 1900년 의왕으로 봉해졌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항일독립투사들과 접촉하여 1919년 대동단의 전협, 최익환 등과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였으며, 계획을 실행에 옮기던 중 그해 11월 만주 안동에서 일본경찰에게 발각당해 본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여러 차례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항일의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성북동에 있던 황윤명의 별장(서울시 성북동 별서)을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1945년 5월 독립운동가 이관구에게 서울 성북동 별서(성락원)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李堈
  • 이명칭: 만오(晩悟), 평길(平吉), 의왕(義王), 의친왕(義親王), 의화군(義和君)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기타

시기

주소

  • 주소: 02823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 (선잠로2길 47)
  • 비고: 서울 성북동 별서

근거자료 원문

  •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별장이다.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고,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30쪽
  • 정의 1877(고종 14)∼1955. 조선 말기의 왕족.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평길(李平吉). 호는 만오(晩悟). 의왕(義王)·의친왕(義親王) 또는 의화군(義和君)이라고도 불린다. 고종의 다섯째아들이며, 어머니는 귀인장씨(貴人張氏)이다. 1891년(고종 28) 12월 의화군에 봉하여졌으며, 1893년 9월 김사준(金思濬)의 딸을 맞아 가례(嘉禮)를 올렸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4년 9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전승을 축하하는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임명되어 일본에 갔다가 그해 10월에 귀국하였다. 1895년 5월에는 특파대사에 임명되었으며, 같은해 8월에는 특파대사자격으로 영국·독일·러시아·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 등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1900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미국대학교 특별과에 입학하였으며, 같은해 8월에 의왕으로 봉하여졌다. 1905년 4월 미국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여 그해 6월에 적십자사총재가 되었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항일독립투사들과 접촉하여 1919년 대동단(大同團)의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과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였으며, 계획을 실행에 옮기던 도중 그해 11월 만주 안동(安東)에서 일본경찰에게 발각당하여 강제로 본국에 송환되었다. 그뒤 여러 차례 일본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하여 항일의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이우(李鍝)와 이건(李健) 두 아들을 두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이강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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