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 함경남도 북청군 곡후면 하천리 672번지
주소: 서울 안암정 181-8번지
계열과 단체: 독서회
<활동 내용>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40년 10월 서울 중앙중학교 3학년 재학중 盧國煥·黃鍾甲·柳永夏·趙誠勳과 함께 정치와 역사에 대하여 토론하는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41년 7월경 이들은 조직의 확대를 시도하여 이기을은 황종갑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항일유격대의 소식을 알아보는 것 이외에 다른 동지들은 중국에 있는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의 활동 정보를 수집하여 교환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들은 서신을 통하여 2학기 개학 3∼4일 전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 협의할 것을 연락하였다. 그러나 황종갑의 서신이 사전 검열에 발각되어 이기을은 황종갑과 함께 함흥에서 체포되었고 다른 동지들도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이기을을 비롯한 이들은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100일 만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교사 최복현은 1942년 9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제9권, p.791.
본적은 함경남도 북청군 곡후면이 아니라 속후면이다. 이기을의 자서전을 통해 확인하였다. (이기을, 『도운 자서전』, 박영사, 1999,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