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병
?
인물 개인 마을주민
미아리 역학촌에 처음으로 문을 연 역학사이다. 이곳으로 오기전에는 남산 기슭 양동에서 영업을 시작했으나, 서울 도심이 개발되면서 변두리 지역인 미아리 고개로 옮겨왔는데, 종점과도 가까울 뿐 아니라 고개를 오르내리는 행인들도 많아 점집을 차리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고 한다.
돈암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
  • 비고: 미아리 역학촌(활동)

근거자료 원문

  • 이도병 역학사(철원철학감정소) 선생님께서 여기 처음 들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좀 듣고싶은데요, 선생님 고향은 어디신가요? 고향이 강원도 철원이에요. 고석정이 있는 강원도 철원 동송읍. 고향에서 십리 떨어진 곳에 노동당사, 백마고지가 있어요. 옛날 53년도에 밤에는 중공군이 차지하고 낮에는 미군이 차지하고 그랬죠. 백마고지에서 전쟁해서 거기서 많이 돌아가셨죠. 우리가 그 철원 동성읍에 오덕 1리에서 살았거든요. 옛날 할아버지 적에 사방 10리를 남에 땅 안딛고 다닌다고 그랬어요. 그만큼 땅이 많았죠. 그러다가 46년도, 내가 6살 때 공산당에 몰수 당했어요. 할아버지는 연천까지 쫓겨났었지. 다 몰아내고 토지개혁해서 한 집에 열두 마지기 2400평씩 배당을 했어. 배당을 하고는 저희가 소작료를 안 받는다고 그러더니 전쟁을 해야하니 세금을 만들어서 현물세를 물렸죠. 그래서 소작료에 반을 더 뺏어갔지. 나는 2살때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어요. 이북에서 수정체가 터져나와가지고 한눈이 그러더니 양쪽이 다 그렇게 됐어요. 병원에 갔더니 거기서 수술을 못한다고해서 11살에 피난 나와서 신갈 피난민수용소에 있었어요. 휴전되고 53년도 11월, 열세 살 때 영등포 신길동에 있는 안과를 찾아갔더니 미군이 와서 보고서 수술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대방동에 있는 미군병원에서 수술했어요. 수술해서 지금 빛은 보여요. 그러니까 일찍만 수술했으면 볼 수 있었지. 이후로 먹고 살기 위해서 학교를 안다니고 독학으로 독선생 밑에 들어가서 역술을 배웠죠. 점자도 그 선생님한테 배운거죠.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157
  • 미아리고개 아래에 처음으로 문을 연 점집의 역학사이다. 이도병 역학사는 미아리고개로 오기 전 남산 기슭 양동(오늘날 서울역 앞 구 대우빌딩 주변)에서 처음 점집을 차리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서울 도심 개발이 시작되면서 양동과 종로 3가 등지에 밀집되어 있던 점집들이 모두 철거를 당하는 바람에 역학사들은 변두리 지역으로 각기 흩어져 생계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이도병 역학사가 들어온 미아리고개 아랫동네는 그런 변두리 지역 가운데 한 곳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곳은 집값이 싸고 전차 종점과도 가까울 뿐 아니라 고개를 오르내리는 행인들도 많아 점집을 차리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렇게 굴다리 밑에서 점을 쳤던 이도병 역학사의 점이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꼬였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영업 2년 만에 가게를 마련해 손님을 받았고 고향 철원의 이름을 딴 간판을 걸었다.
    박수진 외 5인, 2014, 미아리고개, 131-13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17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