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맹인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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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사건 의례
유물 무형문화재
성북구 정릉동 북악당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다. 북악당은 성북구 아리랑로19다길 16(정릉동 506-109)에 위치한 종교시설로 1978년 미아리고개에 있던 당을 팔아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정릉동
  •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 서울맹인독경(1)
  •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 서울맹인독경(2)
  •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 서울맹인독경(3)
  •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 서울맹인독경(4)
  •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 서울맹인독경(5)
  •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 서울맹인독경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821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506-109 (아리랑로19다길 16)
  • 비고: 북악당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이수남 역학사(개나리역학사) 인터뷰 -독경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죠. 나가서는 주로 독경을 하죠. 아픈 사람 낫게 해주는 경도 있고, 액을 막아주는 경도 있고, 상황에 따라 경이 많죠. 혼자 하는 것도 있고 셋이 다섯이 하는 것도 있고 108명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 시간은 때마다 다른데 두세 시간 걸리는 것도 너덧시간 걸리는 것도 있고. 옥추경(玉樞經)이라는 것이 있어서 귀신을 잡아 가두거나 쫓을 때 하는데 이런 건 왼종일 하기도 해요. 일에 따라 다르죠. 집안에서도 하지만 많을 때는 일하는 당에 가서 하죠. 정릉 북악당에서 많이 하죠. 거기는 우리 역리학회의 공영당이죠. 무당들이 쓰는 당은 따로 있지. 우리 역리학회 모임을 두 번 북악당에서 가져요. 10월 1일에는 서울지회 총회가 있어요.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59.
  •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이러한 독경은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서울의 4대문 안에는 무당이 살 수 없었고 굿도 도성 밖에서만 했으며 승려들의 출입이 금지되었었으나,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17세기 후반까지 국행기우제로 열렸고, 궁중과 양반층, 민간의 대표적인 의례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사실은 서울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을 담은 류만공의 『歲時風謠(세시풍요)』(1843년)에 ?시월을 속칭 ‘상달’이라 한다. 이달에 민가에서는 많이들 안택경을 외어 재앙을 없앤다?나 홍석모의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1849)에 ?소경을 불러다가 보름날 전부터 안택경을 읽으며 밤을 새운다. 액을 막고 복을 비는 까닭이다. 이 달이 다 가도록 계속한다?등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이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서울맹인독경
  • 양정석씨 구술2: 의식 소개 우리는 불경도 아니고 유경도 아니고 옥추경은 도경이야 말 그대로 도경. 옛날에 저 중국서 나왔다고 하는데 도경이에요. 좋게 말해서 신선도라 그래.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옥추경도 만들고 그랬다고. 옥추경은 뭐야 마귀가 됐던 귀신이 됐던 귀신을 위하는 게 아니고 귀신을 없애는 경문이야 어련히 말하자면. 우리는 옥추경을 하기 때문에 귀신을 내쫓아서 없애기도 하고 힘을 빼서. 또 아주 가둬서 없애기도 하고. 이렇게 귀신을 없애는 경문이야. 근데 옛날처럼 경을 읽어서 귀신을 가꾸고 이런 건 지금은 못하고. 왜냐. 왜냐면 패잡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앉아서 독경만 했지. 패잡고 찔러서 돌리는 사람이 해야 할 거 아냐. 옛날에는 마을마다 패잡는 사람이 두 명씩, 세 명씩, 한 명씩 마을마다 있었어. 옛날에는 아프면 병원이 시원찮아. 많지가 않기 때문에 우리네한테 와서 물어요. 병이 낫는데 어떻게 하면 낫겠느냐고. 그걸 봐서 비책이 나면 귀신을 얘기해 가지고 그 집 가서 경을 읽어 그땐 그 집 가서 읽었어. 환자네 집에. 그 뭐 간단한 건 3일도 하고 3일. 귀신이 좀 센 거는 7일 하고. 아주 센 거는 뭐 우리 선생님은 50일까지도 해봤다니까. 나는 직접은 안 해봤고. 나는 21을 3채라 그래. 1주일을 한 채라 그래. 1주일에 한 채. 2주일에 두 채. 이제 3주면 3채라 그래. 채수가 들어가면은 귀신이 억세고 환자는 좀 대단히 병사가 많고. 미친병. 지금 신식으로 말하면 광증. 이거 미친병이여. 막 사람 두드리고 그냥 큰일 날 소리 하고 미친병에 걸리면. 저걸 할 적에는 일주일 이상을 하지. 어느 정도 귀신이 힘이 좀 빠질 만하면. 신장질을 부려서. 신장을 내려가지고 그 귀신을 잡아서 가두지. 그때는 가둬서 없애 놓으면 환자가 나았어요. 뭐 여러 번 본 걸 뭐. 나 공부하던 선생님도. 내가 공부를 44년도부터 시작을 했거든. 내가. 그 44년도면 35년생이니까 44년도면 10살 아냐 10살. 갑신년. 10살에 갔어요. 가서 거기서 먹고 자고 공부를 했어. 선생님 같이는 못 봐요. 일 있으면 손님 치르면서 북 두드리면서 경문 읽고. 일 없을 때는 당신 집에다 데려다 놓고 가르치고. 내가 44년도에 시작을 했는데. 55년도에 가서 끝이 났어. 44년도에 시작한 놈이 56년도에 끝이 났으니. 다들 천재라고 그랬지. 그래가지고 58년도에 서울로 와서. 저 파고다 공원이라고 있어 종로에. 그 뒤에 그때만 해도 못 살 때니까. 그 뒤에 길에 앉아서 점을 보고 그랬을 적이여. 나도 58년도에 몸만 올라왔으니 나 혼자. 벌려면 노점 볼 수밖에 없었지. 노점 봐 가지고 살다가. 장가도 가고 집도 사고 살고 그랬던 거지. 그래 거기 가서 이제 경을 하니까 당세 올려 달라 할 수는 없잖아. 내당이니까. 한 번 지어놓은 거 그대로지. 그래서 지금 내려오고 있는데. 요즘은 경이 없어요. 관리자가 수입이 없으니까 누가 들어와서 당을 관리하려 하지 않아. 옛날에는 서로 오려고 했어 서로서로 집 그냥 살고 벌이도 되고. 지금은 일이 푹 죽어서 없어요. 그리고 더러 있어야 그전에 당이 없을 적에나 내당이 있어야 한다고 성화를 하던 사람이. 다섯 사람이나 하나 온 거 이런 거 다 집에서 해버려 자기네 집에서 사람 성격이 그렇더라고. 난 내가 당을 만들어서 그런지도 몰라도 세 사람 하는 일이라도 꼭 정릉당에 가서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돈암동에도 보면 당에서 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다 자기 집에서 그럭저럭 해버려. 그니까 당에 수익이 점점 없지. 그니까 수익이 없으니까 와서 잠이나 공짜로 자려고. 관리자가 있어 주지는 않잖아. 그래서 지금 그것도 걱정이에요. 그걸 팔아야 한다는 말도 있고. 왜 그러냐. 옛날에는 우리 단체에 들어오면 간판을 붙이고 철학 점을 봐야했어. 이게 직업단체야. 간단히 얘기하면. 이 직업을 안 하고 예수를 믿거나 하면 들어오질 못해. 이 단체가 이제 400, 500년 내려온 단체가 일련에 깨지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보기엔. 당장 이대로 나가면 30년이나 갈까 나 속으로 그러고 있어. -양정석(남, 80) 성북구 종암동 희망철학원, 2014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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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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