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린
1883.02 - 1950
인물 개인 언론인
인물 개인 종교인
인물 개인 정치인
인물 개인 문인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언론인이자 정치인, 종교인이다. 충청남도 서산출생으로 한학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1907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1909년 오세창·장효근이 『대한민보』를 창간할 때 논설기자로 민중계몽과 국민지식계발에 힘썼다. 1910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월보』의 주필 및 발행인으로 언론을 통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신문』 주필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3년간 투옥하였다. 1930년대 성북리(현 성북동)에 거주하였는데 1938년 ‘무인멸왜기도사건’ 이후 천도교 구파가 일제에 타협하였을 때 친일적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제헌 국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제2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당시 납북되어 납북 중 사망하였다.
성북동

기본정보

시기

  • 시대: 조선시대
  • 시기: 1883.02 - 1950
  • 비고: 6.25전쟁 당시 납북 중 사망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75-1
  • 비고: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75번지

근거자료 원문

  • 일제시기 발간된 유명한 잡지였던 『삼천리』에는 성북동에 관한 몇 가지 기사가 실려 있다. 1933년 10월에 발간된 잡지에 따르면 서울 부근은 모두 경치가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도 성북리는 산수의경치, 공기의 청정으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경성부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고 있는데, 특히 성북리는 “한적한 근교이며 지형과 경치가 아름다워 예술을 벗 삼는 문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성북리는 하나의 문인촌文人村인것 같다고 했다. 1933년 현재 성북리에서 거주하고 있는 문인가는 시인이자 작사가인 김억金億, 여류문인 김일엽金一葉, 평론가이자 소설가였던 김기진金基鎭, 홍효민洪曉民, 단편소설로 유명한소설가 이태준李泰俊,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이종린李鍾麟 등이 있었다.(「城北洞의 文人村」, 『삼천리』 5권 10호, 1933. 10. 1.)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86쪽
  • 그 때문인지 문인들이 많이 이주하여 ‘문인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미 김일엽, 김기진, 이종린 등이 성북동에 살았고, 만해 한용운도 이태준과 같은 해에 심우장을 짓고 성북동 생활을 시작했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123쪽
  •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75번지 ·1919년 3·1운동 후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3년간 투옥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위원,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이사장, 1927년 신간회 참여, 1930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신간회경성지회위원장, 1944년 천도교 교령, 1948년 제헌국회의원,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1950년 납북 중 사망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인명사전 등재)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2쪽
  • 언론인·정치가·종교인(천도교·친일반민족행위자 충남 서산 출생. 아호는 봉산(鳳山), 자는 영일(靈一), 필명은 봉황산인(鳳凰山人)·황산자(凰山子)·황사산인(凰士散人)·우련(又蓮) 등 1930년대 성북리 175번지에 거주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24쪽
  • 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민족주의 계열 이름: 이종린 주소(당시):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75번지 주소(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5-1 비고: 번지 이하 추정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7쪽
  • 천도교계 민족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1930년대에 성북동에 거주하였다. 1938년 ‘무인멸왜기도사건’ 이후 천도교 구파가 일제에 타협하였을 때 친일적 활동을 하였다.
  • 본적 : 충남 서산군 주소: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75번지. 계열과 단체: 3·1운동, 신간회 <활동 내용> 1908년 성균관에 입학하여 경학을 배웠다. 1908년 성균 박사. 1908년 5월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12년 『대한민보』 창립자. 3·1운동 후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3년간 투옥되었다.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위원,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참여에 참여하였다. 1930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신간회경성지회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4년 천도교 교령이 되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1950년 제2대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50년 9월 28일 납북 중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이동초, 『봉산집』 권1(동양서적공사, 1982), pp.277-283. 사해공론, 1936.2.
  • 정의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주필, 천도교월보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종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아호는 황산(凰山), 자는 영일(靈一), 필명은 봉황산인(鳳凰山人)·황산자(凰山子)·황사산인(凰士散人)·우련(又蓮) 등을 사용하였고, 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은 미즈하라 쇼우린(瑞原鍾麟)이었다. 도호(道號)는 보암(普菴).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후기 문신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의 20대 후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8년 혜사(蕙史) 최현구(崔賢九)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1907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한림학사를 지내던 중 시세가 위태로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족형 이종일(李鍾一)이 운영하던 『제국신문』의 기자로 언론생활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 서우학회와 대한협회에 관여하면서 『대한협회회보』와 『기호흥학회회보』에 논설과 법률, 역사, 지리 등 신학문과 한시 등을 발표하였다. 1909년 6월 오세창(吳世昌)·장효근(張孝根)이 『대한민보』를 창간할 때 논설기자로 민중계몽과 국민지식계발에 힘썼으며, 1910년에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월보』의 주필 및 발행인으로 언론을 통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지하신문인 『독립신문』 주필로 활동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피검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1년에 만기 출소한 그는 『천도교월보』의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해에 언론인들의 모임인 무명회를 발기하고 언론 상태 조사특별위원 및 간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하는 한편 개벽사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22년에는 재외조선인출총노동자조사회의 위원이 되었고 1923년 1월에는 유진태, 백관수 등 20여 개 단체의 대표 160여 명과 함께 조선물산장려회를 발기하고 이사와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항거하였다. 또한 1922년 11월 민족독립을 위한 실력 배양과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민립대학운동을 주도하여 조선민립대학기성회 경성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에는 언론집회압박탄핵회를 개최하여 일제의 언론탄압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이후 조선기근구제회 회장, 전조선기자대회 대표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27년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 간의 연합체인 신간회의 발기에 천도교 구파를 대표하여 참여하고 선전부장과 경성지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30년대에 들어 천도교 교령 및 장로로 활동하면서 조선교육협회 이사, 여자고학생상조회 후원회원, 조선과학지식보급회 임원, 조선어표준사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다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협력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을 시작으로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장, 흥아보국단 경기도 준비위원, 임전대책협의회 준비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준비위원, 발기인, 상무이사, 지원병보급설전대 강사,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 천도교위원,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국민동지회 발기인, 조선언론보국회 명예회원 등 일제가 전시동원체제를 위해 조직한 각종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광복 후 조선독립운동사편찬발기인회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정부수립에 즈음하여 제헌국회에 진출한다. 1950년 5·30총선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발병하자 가출옥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 이종린의 일제시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11·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4: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20~183)에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이종린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5-28

관련 마을아카이브

  • 성북정회
    이야깃거리
    성북정회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
  • 성북유치원
    이야깃거리
    성북유치원
    분류: 장소
    시기: 일제강점기
  • 이신구
    이야깃거리
    이신구
    분류: 인물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