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1875 - 1952
인물 개인 사업가
성북구 성북동에 별장이 있었던 조선 말기 부호이다. 1875년 서울 장교동에서 태어난 이종석은 가문이 대대로 부유하였는데 형이 익사하면서 엄비가 하사한 땅을 그대로 받아 장안의 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1932년 9월 보인학원(현 보인중·고등학교)의 교주(校主)로 취임하였다. 1935년에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을 받았다. 장교동에 살던 이종석은 성북동에 여름 별장을 두었는데 이 건물은 별장 건축으로 우리나라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종석 별장은 1985년 덕수교회에서 인수하여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성북동
  • 성북동 이종석 별장(1)
  • 성북동 이종석 별장(2)
  • 이종석 별장 외관
  • 이종석 별장 내부(1)
  • 이종석 별장 내부(2)
  • 이종석 별장 내부(3)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李種奭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사업가

시기

주소

  • 주소: 02879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43-4 (성북로 131)
  • 비고: 이종석 별장

근거자료 원문

  • 마지막으로 지주였던 이종석李種奭 별장이 있었다. 이 별장은 마치 왕이 사는 듯이 화려했다고 한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87쪽
  • 성북동 이종석 별장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0호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31 이종석 별장은 조선 말기의 부호 이종석李鍾奭이 1900년경에 지은 별장이라고 전하며, 일설에는 왕족이 지은 별장을 매입했다고도 한다. 1960년 12월 대림산업 회장을 지낸 이재준이 취득하여 ‘성북동 이재준 가’라는 명칭이 붙었다가 1985년 11월 덕수교회에서 인수하여 현재는 동 교회의 영성수련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북동 서쪽 골짜기, 장방형의 집터에 지어진 이 집은 서북쪽은 낮은 동산이고 집터 앞은 좁은 길이다. 이 집은 사랑채 비슷한 별채인 안채와 이에 부속된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물이 있는 바깥마당 의 동북쪽에 안채가 있고, 북쪽에 행랑채가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 면 3칸인 ‘ㄹ자’ 모양의 평면으로 남향집이다. 건평은 29.8평에 이른다. 대청 옆 누마루에 ‘일관정一觀亭’이라고 쓴 편액을 걸고, 추녀에는 풍경을 달았으며 회색벽돌로 영롱담을 쌓아 가옥과 마당을 둘러막았다. 특히 안채로 드나드는 일각대문과 그 바깥마당의 우물가는 집터 주위의 수목과 마당의 소나무와 어울려 예스러운 맛을 더해준다. 이 집은 살림집이라기보다 별장 건축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집이라 할 수 있다. 『덕수교회 60년사』에는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이태준, 이상, 정지용 등 문인들이 회합을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266-267쪽
  • 뱃사공이었던 이종석은 젓갈장사로 돈을 모은 후 한강에서 오는 목재, 충청도에서 올라오는 양곡과 해산물 장사로 거상이 된 인물이다. 그는 당시 마포에서 가장 많은 상선을 가진 상인이었다고 한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16쪽
  • ­ 이종석 ㆍ서울 장교동 부자로 알려진 부호 ㆍ1932년 9월 1일, 보인학원(현 보인중고등학교) 교주로 취임(사재기부) ㆍ1935년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19쪽
  • [ 44 ] 성북동 이종석 별장 1. 이종석 ○ 1875년 서울 장교동에서 태어난 이종석은 가문이 대대로 부유하였는데 형이 익사하면서 엄비가 하사한 땅을 그대로 받아 장안의 갑부가 되었으며, 성북동 가옥은 이종석의 여름 별장이었음. 재단법인 보인학원(現 보인중고, 송파구 오금동)의 설립자.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48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4-23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