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 도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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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 문화재
사건 의례
성북구 석관동 도당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석관동 도당에서 모셔지는 신은 천장산의 산신인데,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봉화산신은 ‘도당할아버지’이고, 천장산신은 ‘도당할머니’로 인식되어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서의 여신으로 모셔졌다. 그런데 의릉이 조성되면서 석관동 석관파출소(성북구 화랑로32가길 20) 건너편 현재 위치로 옮겨지게 된 후 동신(洞神)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도당 안에는 신주(神主) 대신 항아리에 벼를 가득 넣고 짚으로 땋은 주저리로 덮어 놓았다. 주신(主神)이 여신이었음과 이 마을의 주업이 농업으로서 풍농을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석관동
  • 석관동 도당제
  • 2013 석관동 도당제(1)
  • 2013 석관동 도당제(2)
  • 2013 석관동 도당제(3)
  • 2019 석관동 도당제(1)
  • 2019 석관동 도당제(2)
  • 2019 석관동 도당제(3)
  • 2019 석관동 도당제(4)
  • 2019 석관동 도당제(5)
  • 2019 석관동 도당제(6)
  • 2019 석관동 도당제(7)
  • 2021 석관동 도당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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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석관동 도당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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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석관동 도당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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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석관동 도당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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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石串洞 都堂祭
  • 이명칭: 석관동 산신제(石串洞 山神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사건 의례

시기

  • 시대: 미상
  • 시기: ?
  • 비고: 매년 음력 10월 초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340-17 (화랑로32가길 17)
  • 비고: 석관동 도당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일시: 2013년 11월 3일 오후 5시 (음력 10월 1일)/ 장소: 석관동 도당 (화랑로32길 146-20 / 석관동 산1-5)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39쪽
    2013년에 석관동 도당제가 진행된 장소와 시간이다. 현재 석관동 도당의 공식주소는 석관동 340번지이다.
  • 석관동 도당. 돌곶이역 근처 석관지구대 앞 삼거리에 있다. 평소에는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39쪽
  • 신체(神體). 당내에 신주(神主) 대신 항아리에 벼를 가득 넣고 짚으로 땋은 주저리로 덮어 놓았다. 주신(主神)이 여신이었음과, 이 마을의 주업이 농업으로서 풍농을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도당신(都堂神) 양주 분이 있는데 중화동 봉화산신은 ‘도당 할아버지’이고, 천장산신은 ‘도당 할머니’라고 한다.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39쪽
  • 아헌례 후 재배. 제상에 올리는 황소 머리는 수놈이어야 한다. 이렇게 소를 수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동신(洞神)이 여신임을 알 수 있다.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39쪽
  • 1) 石串洞 都堂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都堂神 양조분이 있는데 현재 中和洞 烽火山神은 都堂할아버지이며 天藏山神은 都堂할머니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石串洞에서는 都堂할머니神을 위한다고 한다. 王陸이 들어오기 전에는 天藏山아래 있으면서 山神으로 받들다가 이주하면서 洞神으로 받든 것이라고 한다. 主神의 호청은 都堂할머니라 부르며 祝文의 表記는 土地之神으로 되어 있다. 이 마을 堂祭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祭官選定이라고 한다. 석관 1·2洞 중 대부분 土着人들이 이 堂을 모시는데 얼마 전까지는 7명으로 祭官 3명(都家 1, 소임 2) 주비 4명을 뽑았으나 선출에 애로점 이 많아 1980년부터는 都家 1, 소임 2, 주비 2명 모두 5명으로 祭官을 줄였다고 한다. 祭官選出方法: 선정의 대상자와 그날(제사일)의 日辰과 生氣福德이 맞아야 한다. 또 맞는 사람이 있어도 예를 들어 解産을 했다든가 初喪이 났다든가 집안의 不淨이 있으면 선출되지 못한다. 選出日은 祭日 10일전에 선출하며 선출된 제관은 선출된 그날부터 출입을 삼가고 매일 목욕재계를 해야 하며 內外를 禁함은 물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한다. 또 堂주위에는 왼색이기 창호지를 끼워 주위에 금줄을 두르고 출입을 금한다. 옛날 天藏山에서 받들때는 산길목 요소 요소에 금줄을 쳐서 출입을 금했으며 산 중턱에서 솟아나는 天然水로 음식을 만들었다 한다. 祭日은 매년 10월 초하루 日沒이 되면 致祭하는데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라 한다. 床차림 : 黃牛, 수탉, 3색과실(대추·밤·감), 祭酒(獨酒), 콩(白豆), 팔(赤豆), 소적, 시루떡, 백설기, 건대구, 후추 등이다. 특히 黃牛는 숫놈으로 흰점이 있거나 검은 점이 있어도 쓰지 못하며, 시장에서 소를 살 때는 祭官이 직접 흥정을 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제관이 아닌 사람을 넣어 흥정을 한다. 소·닭 등 숫놈으로 쓰는 것으로 보아 洞神이 女神임을 짐작케 한다. 또 祭酒를 빚는데도 큰 항아리 두 개를 마련하고 그 중 한 항아리에는 벼를 넣고 나머지 항아리에는 누룩을 빚어 넣은 다음 堂內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祭酒를 마련한다. 이 모든 祭需는 都家에서 준비한다. 祭儀節次: 焚香, 再拜, 祝, 燒紙 순으로 진행한다. 소지의 순은 부락전체, 제관, 마을 年老順이며 備禮式 祭儀로 시종된다. 儒禮風의 洞祭는 家禮祭祀法과 비슷하다. 즉 祭官은 祭主, 부락민은 친척, 洞神은 神主와 같다. 제사 지내는 방법도 비슷하나 다만 燒紙가 더 첨가될 뿐이다. 또 祝文의 내용은 대부분 所願成就를 기원하는 것이나 문장에 있어서는 통일되지 못하고 모두 조금씩 다르다. 祝文의 내용을 보자. 石串洞 山神祭 祝文 維歲次 干支 都家某敢昭告子 土地之神 令爲 서울市 城北區 石串洞 男女老少 自今年 至明年 憂患疾痼 永爲 消滅 六畜養盛生衰 祈薦子神尙 饗. 〈올해에도 몇월 몇일 도가 아무는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토지신이시여 지금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남여 늙은이 어린이는 금년부터 내년에 이르기까지 우환질고를 소멸하여 주시고 모든 동물이 번성하게 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삼가 신을 받드오니 많이 잡수십시오.〉 특히 祭需 중 쇠고기는 전부 꼬지에 편다. 즉 내장은 내장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꾀어 짚으로 엮은 다음 제관 5명이 집집마다(洞神을 信奉하는 집) 돌린다. 각 가정에서는 그날 祭需를 받기 위해 깨끗하게 마련한 쟁반을 준비해서 기다린다. 祭費는 都家에서 준비한 다음 제사가 끝나면 洞民이 모여 경비 일체를 공동부담한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36-637쪽
  • 마을공동체 의례, 석관동 도당제 석관동 도당제에 대해서는 1993년 『성북구지』, 2005년 『서울특별시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 2018년 『「성북구지」발간을 위한 연구용역 사업 보고서』20등에서 서술된 바 있다. 이것을 종합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석관동 도당은 여러 차례 이전을 거쳐 현재는 석관지구대 맞은편에 있다. 약 5∼6평 정도의 시멘트 건물에 지붕은 기와를 얹었으며 당 안에는 항아리에 벼를 가득 넣고 짚으로 땋아 주저리로 덮어 둔 신위가 있다. 구전에 의하면 현재 중랑구 중화동 봉화산신烽火山神은 도당 할아버지이며, 이 당에서 모시는 천장산신天藏山神은 도당 할머니라고 한다. 원래 의릉懿陵이 들어오기 전에는 천장산天藏山 아래의 산신으로 받들다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동신洞神으로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당집의 위치에 대해 두 보고서22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맞추어보면 대개 두 번의 장소 이동이 있었고, 따라서 현재의 당집은 세 번째 지은 건물이 된다. 첫 번째 이동은 의릉이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당집은 원래 천장산 중턱에 있다가 마을 밑으로 내려오는데, 이곳이 1962년 의릉 안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설 때까지 있던 자리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관내에 위치한 의릉에 일반인이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집의 경우는 석관동 주민들이 오랜 전통임을 내세워 계속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보부 측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당집을 정보부 남쪽 담장의 현 위치로 옮겨주었는데, 이것이 두 번째 이동이 된 셈이다. 당집은 1990년대에 한 번 수리한 상태이고,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면서 문짝이 뜯기는 등 훼손이 심해지자 철문을 달고 담장을 쳤으며 평상시 불필요한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골목에 문을 달아 근처까지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된 상태다. 축문의 표기는 ‘토지지신土地之神’으로 되어 있다.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두 신위를 모신다고 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한 말 정도의 벼를 담아 당집에 보관하는 항아리는 하나여서 신위는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란히 또 한 항아리가 묻혀있는데 이 항아리는 산신제 때 제주祭酒를 담는 용도여서 신위로 보기 힘들다. 나란히 묻어 놓은 두 항아리를 각각 짚주저리 2개로 덮어놓아 신위가 둘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경기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짚주저리는 신체가 아니라 항아리나 제기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일 뿐이다. 도당제는 도당제 추진위원회의 주최로 지낸다. 예전에는 도당제를 알리는 통문을 돌렸으나 현재는 총무를 맡은 강명복 씨가 전화를 한다. 2018년 추진위원장으로는 전영필 씨, 총무에 강명복 씨가 맡고 있다. 도당의 제사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 오후에 시작되는데 제관으로 선정된 집이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도가都家가 되며 일을 거드는 소임 외에 주비를 뽑는다. 주비는 4명을 뽑기도 하고 2명을 뽑기도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소를 제물로 쓰다가 쇠머리로 간소화하면서 나온 변화인 듯하다. 제관을 선정하는 절차는 매우 까다로워서 제삿날의 일진日辰과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아야 한다. 만약 이 조건이 맞아도 그 집안에 해산을 했다든가 초상이 났다든가 부정不淨이 있으면 자격이 없다. 제관 선정은 제삿날 10일 전에 했으며, 선출된 제관은 그날부터 출입을 삼가고 매일 목욕재계를 하며, 내외를 금하고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하였다. 또 당 주위에는 왼새끼에 창호지를 끼운 금줄을 치고 출입을 금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미 많이 간소화되었다. 제사 비용은 마을기금과 주민 추렴으로 충당한다. 마을기금은 주로 동네에 초상이 나서 동네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달공소리를 할 때 상주가 수고했다고 내는 돈을 모아 둔 것이다. 요즘은 도당제를 지낼 때는 구청에서 지원이 90만 원 정도가 나온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이중계 금액에서 지출한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168-170쪽
  • 상차림은 소머리, 쇠족 4개, 소꼬리, 수탉, 삼색과실(밤 · 대추 · 감), 제주(탁주), 콩(백두), 팥(적두), 소적, 병餠, 건대구 등이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직접 소를 잡고 이것을 삶아서 제물을 마련했다. 지금은 마장동에 가서 소머리와 쇠족, 소꼬리를 사온다. 이것들을 올리면 소 한 마리를 올리는 것으로 인식한다. 큰 항아리 두 개가 준비되어 있어 그중 한 항아리에는 벼를 넣고 나머지 항아리에는 누룩을 빚어 넣은 다음 당내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제주를 마련한다. 이 모든 제물은 도가에서 준비한다. 주민들의 참여도가 낮아지면서 지금은 소머리를 올린다고 하며 제주도 막걸리로 대체되었다. 제사에 임하기 전에 소임과 주비들은 당집 주위를 정결하게 청소하고 그릇을 닦고 가마솥을 걸어 음식을 장만한다. 항아리에 일 년간 담아두었던 벼를 덜고 새 벼로 갈아 넣는다. 제의祭儀는 분향 · 재배 · 독축讀祝 · 소지 올리기 순서로 진행된다. 재배는 제관과 주비가 함께 한다. 제사가 끝나면 분육分肉에 들어간다. 분육한 고기는 모두 꼬지에 꿰는데, 내장은 내장 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꿰어 짚으로 엮는다. 아래는 1993년 『성북구지』에서 보고된 축문이다. 石串洞 山神祭 祝文 維歲次 干支 都家某 敢昭告于 土地之神 令爲 서울市 城北區 石串洞 男女老少 自今年 至明年 憂患疾痼 永爲消滅 六畜蕃盛生衰 祗薦于神尙 饗 올해에도 몇 월 몇 일 도가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토지신이시여 지금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남녀노소는 금년부터 내년에 이르기까지 우환질고를 소멸하여 주시고 모든 동물이 번성하게 해주시 길 바라옵니다. 삼가 신을 받드오니 많이 잡수십시오. 분육한 소와 제수祭需는 제관과 주비가 집집마다 돌린다. 1950~1960년대까지 참여한 마을주민이 100여 호가 넘었기 때문에 그 숫자대로 정확하게 나누었다. 각 가정에서는 그날 제수를 받기 위해 깨끗한 반상을 준비하고 촛불을 밝혀둔다. 받은 제물로 각자 고사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이것으로 국을 끓여 집안 식구끼리 먹는다. 식구가 마을 밖에 있을 때에는 와서 먹어야지 받은 고기를 마을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즉 쇠고기와 제수는 어떤 경우든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참여하는 마을 주민도 남은 토박이 43호에 지나지 않고 의례도 많이 간소화되었다. 소에서 쇠머리로 간소화된 이후로 제물은 제관과 그밖의 일에 참여한 사람들이 음복하는 데 쓴다. 항아리에 담아두었던 벼는 제관이 가져간다. 현재는 도당제를 지내고 나서 장위리에 있는 활량리 소머리국밥집에서 결산보고를 하고 식사를 한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170-173쪽
  • 성북구 석관동 도당은 현재 4번째 이전된 상태로, 중앙정보부 건물 옹벽 밑에 위치한다. 약 5-6평 정도의 시멘트 건물에 기와로 덮었으며 당내에는 항아리에 벼를 가득 넣고 짚으로 땋은 주저리로 덮어 두는데 항아리가 이 신당의 주인이다. 구전에 의하면 도당신 내외분이 있는데 현재 중화동 봉화산신은 도당할아버지이며 천장산신은 도당할머니라고 한다. 원래 경종의 능이 들어오기 전에 천장산 아래에 살면서 산신으로 받들다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동신으로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평안과 길복추구를 위해 제를 지낸다. 제일은 음력 10월 초하루이고 해가지면 제사를 시작한다. 제수는 도가에서 준비한다. 제물은 황소, 수탉, 삼색과일, 제주(탁주), 콩, 팥, 소적, 시루떡, 백설기, 건대구 등이다. 특히 황소는 흰점이 있거나 검은 점이 없는 깨끗한 소를 개인에게 부탁하여 구입해서 당 뒤 소나무에 매어 놓았다가 잡아 올린다. 신체는 2개로 각각 벼와 술을 담는 항아리이다. 벼를 담는 항아리에는 벼를 담고 주저리로 덮어두는데, 주저리 앞에 폐백을 건다. 주저리와 폐백은 제를 지내기 전 새것으로 갈아주고 현 주저리와 폐백은 당 밖에서 소각한다. 그런데 제주를 빚는 항아리가 신체로 여겨지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과는 다르다. 제주를 담는 항아리는 당근처에 묻어두었다 제사 당일에 술을 짜서 올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제기이다. 제기 자체가 신체로 여겨지게 된 과정에 대한 자료가 없어 어떻게 해서 제주항아리가 신체가 되었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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