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에 동반자작가라 불리던 이효석이 참가한 것은 일종의 이었으나 알고 보면 그것은 이효석 자신에게 있어서는 별다른 전신이 아니었다. 문단에 데뷔하던 때 그는 [운동]이네 [투사] 네 하는 단어를 작품 속에서 즐겨 썼지만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 위함이요 처음부터 그는 사상의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효석이 작고한지 얼마 안 되어 쓴 나의 [이효석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쓴 일이 있다.
“어떻든 씨는 사상이라는 것에 작위적인 규제를 받음이 없이 새가 노래 부르듯 노래 부르는 것을 본령으로 하는 작가였었다. 그러기에 그는 1932, 3년경의 좌익문학의 전면적 퇴조기에도 손쉽게 순수문학으로 전신하여 새로운 조류를 타고 재등장을 해내었던 것이다. 많은 좌익작가가 시대의 큰 흐름에 직면해서 그때까지 자기 몸에 배어있던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혹은 암중에 모색하고 혹은 침잠고음하여 글자그대로 피의 자기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때에 씨만은 몸도 가벼이 새로운 시대로 줄달음쳤던 것이다. 씨는 이 전신에서 지금까지 무거운 짐모양 씨에게 덮어 씌워졌던 시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서 겨우 숨을 돌린 그런 형태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