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 평북 용천 북증 원송 28
주소: 경성부 돈암동 164
계열과 단체: 신의주고등보통학교 학생운동
<활동 내용>
장익민은 조선민족의 독립을 도모함에는 조선인으로서 중등교육을 받는 자가 자각하고 그 목적 실현을 위하여 학생운동을 일으켜 조선민중의 이에 관한 자각을 촉진시키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전제로서 우선 신의주 재류중등학교생도의 단결을 결성하여 장래 이를 전조선인학생의 총연맹에까지 유도하리라고 제1착수는 재신각군유학생친목회의 연합회를 조직하기를 기도하고 용천군 출신 재신유학생친목회 주최의 명목하에 1928년 7월 17일 오후 8시 경 피고인 외 20여명과 재신유학생친목회를 조직하였다. 피압박민족의 상태를 설명한 후 조선민족은 목하 경제적 방면과 정치적 방면 공히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을 입어 파멸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구하기 위하여 우리 학생이 총역량을 집중하여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운동을 하며 등등을 주장하였다. 1928년 9월 동부 매기정 천도교종리원에서 재신총유학생친목회를 조직하고 부서를 정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장익민은 1930년 11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특이사항>
張益敏: 만주국 新京지방검찰청 검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