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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 출생. 소설가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동화 「별나라 공주와 토끼」가 『동아일보』에, 1955년 「흑산도」가 『조선일보』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정한숙, 정한모와 ‘주막酒幕’ 동인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였다. 대표작 『꺼삐딴 리』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혼란스러운 시류에 편승한 주인공을 통해 시대상을 보여준 작품이다.
신소설 연구와 한국 근현대 문학 연구에 힘썼고, 문단과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스물여덟 살에 서울로 내려와 안암동5가 104-80번지에 거처를 정하고, 피난 후 1960년대 초 성북동 성곽 아래 쪽 주택단지에 집을 마련했다. 몇 년 뒤 동소문동1가 140-69번지로 이사해 아래 윗집을 사 두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았다. 박화성, 모윤숙, 김광섭, 김남조 등 해방 전후 문단 작가들과 교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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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꺼삐딴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백사 전광용은 1918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1919년 3월 1일로 출생신고 하였는데 그 해는 기미년 3월 1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때와 같다고 하여 ‘북청 만세동이’라 불렀다. 독립성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함경도 기질, 그중에서도 북청은 함경도 중심이었고, 고향 사람들은 이준열사의 정신을 높이 사는 애국심과 절개를 갖고 있었다. 마을 뒷산인 영덕산 고성터에 올라가 십리 밖 동해의 하얀 파도가 들고 나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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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 온 전광용은 부산 피난 시절 외에는 서울에서 생활하였다. 고향에서 혼인하여 대학에 다니느라 헤어져있던 아내는 세 살배기 큰 딸을 안고 삼팔선을 넘어왔다.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곳은 학교와 가까운 성북구 안암동이었다. 고향 함남 북청이 아닌 안암동5가 104-80번지가 본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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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에 안암동에서 이사한 성북동 집 주변으로는 ‘주막’ 동인 정한숙, 정한모, 대학 동기 한운사가 살았다. 쌍다리 위쪽으로 ‘명성주택’이라고 불린 주택단지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가까운 동소문동1가 140-69번지로 이사를 했다. 계단을 꽤 올라가면 이층 양옥과 단층기와집이 있고, 마당에는 감나무와 영산홍이 있었다. 집에는 평생 연구하며 읽고 쓴 책이 가득했고, 파인 김동환이 쓴 <북청물장사>에 산정 서세옥이 그림을 그린 시화詩畵가 걸려있었다. 명절이면 지인들과 제자들이 찾아와 집이 북적였다. 세배객이 백여 명에 이르러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아내는 떡국을 끓이고 술상을 보느라 쉴 틈이 없었다. 해마다 아내는 끝물에 나온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 대접했다. 평소 술을 즐기는만큼 제자들에게도 술 인심이 후해 고주망태 지경까지 술을 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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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함경남도 북청 출생
1939 동아일보 신춘문예 <별나라 공주와 토끼> 입선
1955 조선일보 신춘문예, <흑산도>로 등단
1956 사상계, 학술논문 <설중매> 논문상 수상
1956~1984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62 <꺼삐딴 리>, 제7회 동인문학상 수상
1970 국어국문학회 회장
1974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1984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1988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