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숙
1912.11.05 - 2008.08.22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10월 근무하던 조흥은행 종로지점에서 동료들에게 전시상황을 전파했다. 그는 사이판 섬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들었다고 하며 사이판의 상황을 전했다. 이로 인해 '군사에 관한 조언비어'를 만들었다 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서울 동대문구 성북정 177-40번지(현 성북로8길 7)에 거주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을유문화사를 창립하여 전무로 재직하다가 1952년 대표이사가 되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명예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출판인 정진숙』(정진숙,을유문화사,1983)이 있다. 정부에서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성북동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정진숙
  • 정진숙 집터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鄭鎭肅
  • 이명칭: 水谷文一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02835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77-42 (성북로8길 7)
  • 비고: 동대문구 성북정 177-40

근거자료 원문

  • ·전시 상황을 전파하다 1945년 육해군형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고 수감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8쪽
  • 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민족주의 계열 이름: 정진숙 주소(당시): 동대문구 성북정 177-40 주소(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7-42 비고: 예전지번 대비 추정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7쪽
  • 1945년 34세. 본적 충남 천안군 북면 운곡리 284번지. 주소 동대문구 성북정 177-40. 전시 상황 전파하여 1945년 육해군형법위반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았다.
  • 본적 : 충남 천안군 북면 운곡리 284번지 주소 : 동대문구 성북정 177-40 계열과 단체 : 시국담 <활동 내용> 1934년 3월 휘문중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11월 東一銀行 남대문지점에 행원으로 채용되었다. 1943년 10월 동일은행이 漢城銀行과 합병하여 朝鮮銀行이 되자 동 은행 종로지점에 근무하였다. 1944년 10월 23일 오전 9시 경 동 지점에서 동 지점에 근무하는 河壹尙 및 金溶汪 등과 잡담 중 “사이판섬에서 돌아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동도의 우리가 완전히 옥쇄함과 사령관은 전 도민을 모아 일본인 이외의 사람은 밖으로 내보냈는데 조선인은 예외로 내보내지 않았을 때, 사령관은 조선인도 밖으로 내보내려고 예외자에 대하여 그대들은 일본을 위하여 지금까지 잘 협력하여 주었다. 그대들은 자유롭게 돌아가려면 돌아가라는 취지로 동인들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내지인은 전부 기관총으로 사살하였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대동아전쟁기 육해군의 군사에 관하여 造言飛語를 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정진숙은 1945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형법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특이사항> 창씨명 水谷文一 <참고문헌> 「정진숙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45.1.29.).
  • ○ 독립의 희망을 말한 대가는 가혹한 처벌로 성북동에 거주했던 정진숙은 조흥은행에서 행원으로 근무했는데 동료와 잡담 중 사이판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옥쇄(玉碎)를 위해 다른 외국인들은 모두 섬 밖으로 내보내고, 조선인들만을 전부 기관총으로 사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되고 이것이 발각되어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광복 직전까지 일본 경찰들의 감시가 얼마나 철저하고 가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09-110쪽
  • ○ 그 외 성북구 거주 독립운동가 정진숙 1919~2008 / 대통령표창 / 성북동 177-40호 거주 조흥은행 종로지점에 근무하던 정진숙은 1944년 10월 동 지점에서 동료들과 잡담 중 “사이판 섬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군이 사이판에서 옥쇄(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하게 죽음)할 당시 일본인 이외의 사람은 밖으로 내보냈는데 조선인은 예외로 해 전부 기관총으로 사살했다”는 이야기를 해 체포 후 징역 8월을 받았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27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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